일요일 밤 11시24분부터 1시간52분간 파일 삭제
포렌식해도 내용 못 알아보게 파일 수정 후 삭제하다 폴더 통째로 삭제
총 444개 파일 지우고, 120개는 복구 못 해
지운 파일명 '180523_에너지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 및 향후 추진일정(BH송부).BAK'
최재형 감사원장은 지난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감사 저항이 굉장히 많았다"며 "국회 감사요구 이후 산업부 공무원들이 관계 자료를 거의 모두 삭제했고, 그것을 복구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또 "감사 저항이 이렇게 심한 감사는 재임하는 동안 처음"이라며 "자료 삭제는 물론이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안 한다"고도 했다. 이같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자료를 폐기한 사실이 20일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 결과에서 감사원은 "산업부 국장과 부하 직원은 2019년 11월 감사원 감사에 대비해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하거나, 삭제(2019년 12월)하는 등 감사원 감사를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감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부 국장 A씨는 2019년 부하 직원 B로부터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부하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A는 B에게 "컴퓨터에 저장된 월성 1호기 관련 문서는 물론, 이메일·휴대전화 등 모든 매체에 저장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자료 제출 누락'으로 시작했다. 감사원은 산업부에 지난해 11월 26일 '월성1호기와 관련된 최근 3년간 내부 보고자료, BH(청와대) 협의 및 보고자료, 한수원과 협의자료 일체' 등을 공문으로 요구했다. 산업부는 같은 달 27~28일 감사원에 일부 자료를 제출하면서, 2018년 4월 3일 대통령 비서실에 보고한 문서 등 대부분의 문서를 보내지 않았다.
산업부는 감사원의 추가 자료제출 요구가 같은 해 12월 2일(월요일)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B씨가 감사원 감사관과 2일 오전 면담이 약속돼 있었기 때문이다. 파일 삭제 작업 개시 시점은 2일을 코 앞에 둔 1일(일요일) 밤 11시였다. 지시를 받은 직원 B씨는 2019년 12월 1일 밤 11시 24분 36초부터 다음 날 새벽 1시 16분 30초까지 약 1시간52분동안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삭제했다. 분량은 총 122개 폴더였다. 산업부는 물론 이 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일요일 밤 늦게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켠 B씨는 산업부에 중요하고 민감한 자료를 우선 삭제했다. 처음에는 삭제 후 포렌식 작업으로 복구해도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 등을 수정해 저장한 후 삭제했다. B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산업부 내에서 자료를 지울 때는 삭제(Delete) 키를 사용해 그냥 지우면 전부 복구되니 제대로 지워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며 "처음에는 문서를 열어 다른 내용을 적고 저장한 후 삭제해 복구해도 원래 문서 내용을 알 수 없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워야 할 파일의 양이 너무 많자, B씨는 파일을 단순 삭제하다가, 이후엔 폴더 자체를 삭제했다.
감사원은 B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포렌식했다. 총 444개의 문서가 있었고, 324개는 문서 내용이 복구됐으나 120개는 그렇지 못했다. B가 삭제한 문서파일 중 감사원이 복구한 주요 파일은 '4234.BAK("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문서)', '180523_에너지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 및 향후 추진일정(BH송부).BAK' 등이다. 관가에서는 청와대를 약칭으로 'BH(Blue House)'로 부른다.
감사원은 산업부 장관에게 "A와 B를 '국가공무원법' 제82조에 따라 징계 처분(경징계 이상)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