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임상 환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로부터 임상 시험을 승인받고 최대 3개월이 지나서야 최초 시험 대상자를 받은 사례도 있다. 해외와 비교해 확진자 수가 적고, 대부분의 코로나19 경증 환자가 지역병원, 생활치료센터 등으로 격리되고 있어 임상 시설을 갖춘 대형병원을 찾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현 추세라면 한국산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는 지역 거점 병원과 감염병 전담병원 간 컨소시엄으로 환자 모집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국내에서 코로나19 치료제의 임상 2상 계획을 승인받은 기업 7곳 중 3곳은 아직 최초 시험대상자 선정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2상을 승인받은 기업은 부광약품(003000), 엔지캠생명과학, 신풍제약(019170), 종근당(185750), 크리스탈지노믹스, 대웅제약(069620), GC녹십자 등 7곳이다.
이 중 종근당, 크리스탈지노믹스, GC녹십자 등이 최초 시험대상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종근당은 지난 6월 17일 식약처로부터 임상 2상 승인을 받았지만, 3개월이 되도록 시험대상자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와 GC녹십자도 각각 7월 1일, 8월 20일 임상 2상을 승인받았지만 같은 처지다.
최초 시험대상자를 선정한 이후도 문제다. 목표로 잡은 시험대상자 수를 모두 채우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7개 기업들은 코로나19 환자 최소 60명에서 최대 100명을 목표로 임상 2상을 진행할 계획이지만, 코로나19 환자 목표수를 채운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부광약품은 지난 4월 14일 가장 먼저 임상 2상 승인을 받은 이후 5월 26일 최초 시험대상자를 선정했다. 하지만 60명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같은 목표를 세운 엔지캠생명과학도 5월 12일 임상 2상을 승인받고 6월 18일 시험대상자를 처음으로 선정하는데 머물렀다. 신풍제약은 5월 13일 임상 2상을 승인 받고 3개월이 넘은 8월 18일에서야 첫 시험대상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대웅제약은 지난 11일 첫 임상2상 시험대상자를 선정했다. 임상 2상 승인을 받은 7월 6일 이후 약 두 달만이다.
현 추세라면 기업별로 애초 설정했던 임상시험 기간 계획 변경도 불가피하다. 내년과 내후년 등 비교적 장기적으로 계획을 잡은 업체는 여유있게 진행할 수 있겠지만, 단기로 잡은 기업들의 마음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연내로 2상 임상시험 계획을 잡은 업체는 3곳이다. 대웅제약은 2상 임상 시험 기간을 7~9월로 설정했고, 부광약품은 4월부터 10월로 잡았다. 크리스탈지노믹스도 7~12월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업들이 코로나19 환자 모시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해외와 비교해 확진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집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670만명을 넘어섰고, 인도는 500만명 이상이다. 브라질은 약 440만명이다. 국내 누적 확진자 수는 9월 들어 2만명을 넘겼다. 이에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서 진행하는 게 수월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원래 한국은 전세계에서 신약 임상이 수월한 대표지역으로 꼽혀왔다. 수도권 대형병원에 환자들이 집중돼 있는데다, 의료진과 시설 수준이 높아서다. 하지만 위중한 코로나19 환자를 제외한 대부분이 지역의료원과 생활치료센터 등에서 격리되면서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치료제 등에 대한 임상시험을 추진할 수 있는 시설은 대형병원에 있기 때문에 해당 시설들에서는 시험을 따로 진행할 수 없다.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격리가 된 상태다보니 코로나19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찾을 수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임상시험을 수행할 수 있는 거점병원과 환자 확보가 용이한 감염병 전담병원 간 컨소시엄을 구성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주관으로 수도권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 인천의료원, 가천대길병원과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을 운영하는 국군수도병원, 중앙대 병원 등이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