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융 개혁을 위한 게임 체인저(판도를 확 바꿔 놓는 것)로 불렸던 온라인 P2P(개인 대 개인) 대출 시장이 몰락했다. 한때 6000개에 달했던 P2P 대출 회사는 이제 10여 개만 남았다. 금융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중국 정부가 퇴출령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14일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CBIRC)는 8월 말 기준 여전히 영업 중인 P2P 대출 업체는 15개라고 밝혔다고 중국 관영 신화사가 보도했다. 지난해 1월 대비 99% 급감했다. 금융 당국이 2016년부터 P2P 대출 시장을 본격 단속한 이후 업계가 빈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P2P 대출 회사는 돈을 빌리려는 사람(채무자)과 빌려주려는 투자자(채권자)를 연결해주는 금융사다. 은행과 같은 기존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돈을 빌리고 빌려준다. 이 과정에서 P2P 플랫폼은 수수료를 받아 돈을 번다.
중국 정부는 2012년에만 해도 P2P 산업 성장을 장려했다. 대부분 국가 소유인 국유은행들이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엔 대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개인이나 회사가 P2P 업체를 통해 자금을 구할 수 있게 됐다. 2014년 1000억 위안 규모였던 중국 P2P 대출 잔액은 2018년 6월 1조3000억 위안으로 커졌다.
그러나 관리·감독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업체가 급증하면서 사기, 디폴트(채무 불이행) 등의 문제가 계속 터졌다. 투자금을 ‘먹고 튀는’ 먹튀 사건도 잇따라 신뢰가 추락했다.
2015년 이쭈바오라는 P2P 대출 업체는 598억 위안(약 10조 원) 규모의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를 벌였다. 투자자에게 15%가 넘는 높은 이자를 약속했다. 회사는 새 투자자에게서 투자금을 받아 기존 투자자에게 원금과 가짜 수익을 지급하는 돌려막기 수법을 썼다. 투자자 90만 명 이상이 피해를 봤다. 이 회사 대표는 2017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일부 P2P 대출 플랫폼은 가짜 채권을 만들어 이자놀이를 하는 사기를 쳤다. 돈을 빌리는 사람의 정보를 허위로 꾸며내 투자금을 끌어모은 후 다른 곳에 더 높은 이자를 받고 빌려준 것이다. 컨설팅사 매킨지는 2018년 낸 보고서에서 "이 모든 것이 자산관리 상품으로 포장돼 온라인에서 판매됐다"며 "P2P 대출이 중국 그림자 금융 규모를 키웠다"고 했다.
중국 정부는 은행 시스템 개혁의 한 방안으로 P2P 대출 시장을 키웠으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모든 P2P 대출 회사에 온라인 소액 대출 회사로 전환할 것을 명령했다. 또 허가를 받으려면 최소 등록 자본 10억 위안(약 1740억 원)을 갖추라고 했다. 일반 은행의 자본 요건과 같은 수준이다. 사실상 P2P 대출업을 퇴출시킨 것이다. 실제로 후난성, 산둥성, 쓰촨성 등이 그해 12월부터 온라인 P2P 대출업을 금지했다.
중국 최대 P2P 대출 업체였던 루진쒀(루팍스)는 규제 압박 속에 주력 사업을 자산관리로 바꿨다. 루진쒀는 해외 시장 진출을 늘리며 내년 미국 증시 상장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P2P 대출 상품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금융 범죄가 잇따르면서다. 지난달 27일부터는 P2P 금융을 은행·보험사와 같은 제도권 내 금융업으로 편입시키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 당국은 시장 정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