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020560)인수에 성공한 HDC현대산업개발(294870)(HDC)이 요즘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데다, 올해 업황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최악이기 때문이다.

HDC는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경쟁 회사였던 애경 그룹 계열 제주항공(089590)보다 1조원 비싼 가격을 써내, 인수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이 대규모 적자를 낸 것으로 드러나면서 결과적으로 HDC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을 적정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사들인 셈이 됐다.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HDC가 인수를 포기할 것이라는 설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HDC가 인수를 포기하지 않더라도 이후 산업은행의 대부금 회수 등을 놓고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인수금액 확정과 범(汎)현대가의 인수금융 투자 등에서 드러난 HDC와 재무적투자자(FI) 미래에셋대우증권과의 갈등이 표면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몽규 회장, 아시아나항공 계열사 임원 면담 중단

정몽규 회장은 2월들어 진행하던 아시아나항공 계열사 사장 및 임원 면담을 최근 돌연 중단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서울, 에어부산을 비롯해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IDT, 금호리조트 등 총 13개 자회사가 있다. 정 회장은 이들 계열사 임원들을 차례로 면담하면서 업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주 면담이 갑자기 중단됐다. ‘오너’인 정 회장이 면담을 중단하면서 인수 작업도 사실상 멈췄다는 게 항공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HDC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지 아니면 포기할 지 장고(長考)에 들어갔다는 풍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HDC가 지주사로 전환한 2018년부터 보내기 시작한 공개 주주서한을 올해 내놓지 않은 것도 이 관측에 불을 지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영업손실(연결재무제표 기준) 4270억원, 순손실 8380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12일 공시했다. 2018년과 비교해 280억원 흑자였던 영업이익은 대규모 적자로 바뀌었고, 1960억원 적자였던 순이익은 손실이 6420억원 늘었다. 본업인 아시아나항공만 떼어놓고 보면 영업손실은 2018년 350억원에서 2019년 3680억원으로 3330억원 늘었다. 순손실은 2018년 960억원에서 2019년 6730억원으로 5770억원 늘어났다.

◇중단거리 노선 위주 사업 구조에 금융부채 부담 짓눌러

HDC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구조조정 등을 통해 적자는 면할 수 있는 회사인 줄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대규모 부실 덩어리였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1000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자금 운용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영업손실이 3000억~4000억원 정도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시아나항공이 대규모 적자를 낸 이유가 단순히 업황 악화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일본 등 중단거리 노선에 대한 의존도가 대한항공보다 높다.

지난해 6월말 현재 국제선 여객 주간 운항 회수는 총 638회인데, 그 가운데 34.5%(220회)가 중국 노선이고 24.0%(153회)가 일본 노선이다. 동남아 노선도 23.2%(148회)에 달한다. 이익이 많이 나는 미주노선 운항 비중은 7.4%(47회), 유럽은 6.1%(39회)에 불과하다. 대한항공이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 비중이 높은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 불매 운동 여파에 LCC의 성장까지 겹치자 아시아나항공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재무구조도 좋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리스회사에서 항공기를 통째로 빌려오는 방식인 운용리스에 의존해왔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운용리스 비중은 보유 항공기 86대 중 55대로 64.0%에 달한다. 운용리스는 리스회사가 항공기의 감가상각과 파손의 위험을 지기 때문에 리스료가 비싸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신규 항공기 5대를 도입하면서 3~4분기 리스료가 3조5200억원까지 늘었다.

아시아나항공이 운용리스 방식에 의존한 것은 부채비율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회사가 사실상 항공기 매입 금액을 빌려주는 방식인 금융리스와 달리 리스료만큼만 비용으로 회계처리하면 됐다. 금융리스는 리스 받은 만큼 부채로 계산해야 했다. 그런데 올해 새 회계기준(IFRS16)이 도입되면서 운용리스도 회계 처리에 부채로 산입(算入)됐다.

아시아나항공 본사.

◇산업은행·미래에셋 등과 갈등 표면화할 수도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HDC와 산업은행의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을 공개 매각하면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꿔준 돈을 상환해 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HDC는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 금호산업에 3200억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2조15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에 유상증자 형태로 투입한다. 이 중 상당액이 부채 상환에 쓰이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와 올해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내지 않았다면,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부채 상환은 양쪽 모두 윈윈(win-win)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순손실을 모두 합치면 1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큰 상황이어서 HDC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지원한 9000억원을 당장 상환할 지를 놓고 HDC와 산업은행의 견해 차가 크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해 산업은행 등이 지원한 크레디트론(마이너스통장처럼 필요에 따라 차입할 수 있는 금액) 4000억원의 상환을 놓고 HDC가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에셋대우증권과의 관계도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HDC가 제주항공보다 1조원 더 많은 금액을 써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미래에셋대우 박현주 회장이 "원하는 기업을 얻으려면 상상 못할 가격을 질러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박현주 회장의 의견을 듣고 정몽규 회장이 적정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모양새다.

과거 미래에셋대우가 재무적투자를 하면서 투자자로 참여한 파트너 기업 경영자에게 자금 회수를 무기로 경영 압박을 가했던 전력도 거론된다.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릴 경우 미래에셋대우가 2대 주주로 침묵을 지키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정몽규 회장이 현대백화점,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 기업들에게 유상증자형태로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참여할 것을 타진하고 있는 것도 미래에셋대우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