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해외 소비자들이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이른바 '역(逆)직구' 활성화를 중점 추진 과제로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액티브X와 같은 낡은 규제에 안주한 결과 국내 소비자의 해외 직구는 폭발적으로 느는데 해외 소비자의 국내 역직구는 걸음마 수준"이라며 "외국 만큼 쉽게 결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역직구가 활성화되면 수출 못지않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천송이 코트'를 언급하며 금융 규제 완화를 지시한 데 이어 10개월 만에 재차 강조한 셈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공인인증서 의무화 조항을 폐지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여전히 해외 소비자들의 불편함은 남아있다. 무엇이 문제이며, 앞으로 어떻게 개선될까.
① '천송이 코트' 언급 이후 어떤 변화 있었나
해외 소비자가 국내 쇼핑몰에서 30만원 이상 결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공인인증서 의무화 제도는 곧바로 폐지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천송이 코트'를 언급한지 13일만인 4월 3일 부랴부랴 공인인증서 의무화 조항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해 7월부터 신용·직불카드 등을 이용한 결제 시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 6월부터 온라인 카드결제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폐지]
금융당국은 이후 보안성 심사를 맡고 있는 금감원 산하 인증방법평가위원회를 민간으로 독립시킬 계획까지 세웠다.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인증 기술의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인증평가위원회는 지난 2010년 스마트폰과 구글 크롬 등에서도 인증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됐지만 정부 산하기관의 특성상 보수적으로 운영되면서 대체인증 기술을 막아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 전자금융거래 본인인증기술 심사 민간기관에 맡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 말 액티브X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인 'HTML5'를 웹표준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금융당국의 주도 하에 각 카드사들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갖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간편결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역직구 활성화를 위해 중국어 상품페이지 제작 지원 등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HTML5 웹표준 지정, 어떻게 바뀔까
② 해외 결제, 편해졌을까
정부의 정책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외국어로 된 '역직구몰'의 수는 크게 늘었다. 쇼핑몰 솔루션 업체 '카페24'에 따르면 역직구몰 사업자는 2013년 말 4300곳에서 지난해 말 1만5000여개로 1년 동안 1만개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역직구 규모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자상거래 역직구 금액은 2011년 49억 원, 2012년 120억원, 2013년 262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34억원으로 집계됐다. 아직 지난해 하반기 통계가 집계되지 않고 있지만 큰 반향을 부르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여전히 해외 소비자들이 국내 물건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외국어 전용 페이지를 통해 결제를 간편하게 만든 대형 쇼핑몰 몇 곳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어렵다. 카페24 솔루션을 이용하는 업체는 알리페이나 텐페이 등 해외 결제대행시스템을 연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인인증서 폐지를 제외한 나머지 정책들이 핵심을 빗겨나가고 있어서다.
가장 큰 문제는 액티브X다. MS사의 익스플로러에서만 구동되는 이 프로그램은 구글 크롬이나 사파리 등 다른 웹프로그램에서 호환성 문제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익스플로러 이용률이 낮은 해외 소비자들은 쇼핑몰에서 결제하려고 해도 계속 오류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
③ 금융당국, 액티브X 폐지에 집중하겠다는데…
미래창조과학부와 금융위원회는 궁극적으로 액티브X를 폐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말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을 소집해 액티브X 시스템을 모두 없애라고 요구했다가 업계의 반발에 부딪히자 '.exe'인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미래부 관계자는 "액티브X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 익스프롤러에서만 작동해 웹호환성이 부족하다"며 "웹표준 부합 환경으로 바뀐다면 크롬이나 사파리 등 다양한 브라우저에서 사용이 가능해 인터넷 이용 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쇼핑업체 등 일부 업계에서 새로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불편함이 액티브X를 설치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발표가 미뤄진 상황이다.
정부는 또 HTML5 웹표준을 통해 별도의 보조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온라인 결제가 가능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다만 이 정책은 '권고안' 수준에 불과했다. 카드업체나 결제대행(PG·Payment Gateway)사는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는 간편 결제는 보안 위험이 큰 상황에서 액티브X를 대체할 수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 11번가 등의 오픈마켓 사이트는 정부의 폐지 통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액티브X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 액티브X 폐지, 업계와 전문가 입장은
③ 아마존처럼 1초 결제 가능해질까
국내 직구족들이 애용하는 세계적인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Amazon)의 경우 결제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것이 끝난다. 회원을 가입할 때 미리 입력해 놓은 주소와 카드 정보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가 공인인증서 의무화 규제를 폐지하고 결제업체에 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우리 또한 이 같은 결제 시스템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결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이냐의 여부다. 미국 아마존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선(先)보상 후(後) 조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고객의 카드가 누군가에 의해 잘못 결제됐다면 피해액을 일단 보상하고 나중에 진상조사를 거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대처한다. 다소 떨어지는 보안 수준을 이른바 '관리적 보호조치'로 메우는 시스템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아마존과 같은 보상 시스템을 구현할 경우 해킹 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특히 이같은 시스템으로 전환할 경우 중소형 쇼핑몰의 경우 아예 문을 닫아야 할 처지"라고 호소했다.
④ 결제만 해결되면 역직구 활성화될까
공인인증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역직구가 바로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사실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통관절차가 복잡한 점도 역직구의 또 다른 걸림돌로 꼽힌다. 이에 따라 관세청 등 관련 부처들은 역직구를 위한 국내 배송 전용센터설립 추진 중이고, 지난해 9월부터 역직구 통계 파악에도 착수한 상태다.
역직구를 겨냥한 산업 자체가 미미한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롯데면세점이나 신라면세점 등은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외국어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소개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쇼핑업체들이 아직 해외 결제나 배송까지 신경 쓸 여력이 안된다"며 "한국 상품 직구에 대한 홍보도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