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플래닛에 다니는 백은수씨의 명함은 다른 직원들에 비해 특별하다. 직책은 프로젝트 리더. 팀명은 플래닛X인큐베이션 센터의 아이마그넷팀이다. 얼핏 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는 SK플래닛의 사내벤처제도 플래닛X의 지원을 받아 신생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개발한 모바일 미술 큐레이션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아이마그넷(imagnet)은 지난해 첫선을 보이고 매출 2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아이마그넷은 국내 신진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선보일 갤러리가 돼주고,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작품들을 감상하는 연결 통로 역할을 하는 서비스다. 작가들이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유통 플랫폼으로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아이마그넷팀은 독립된 업무공간과 추진비를 받고, 의사결정 전권도 팀장이 갖는다. 회사는 개입하지 않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백은수씨는 “저는 복 받은 사람이죠”라며 “회사의 도움으로 원하던 창업까지 했으니”라고 말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발맞춰 백씨처럼 사내벤처를 통해 창업의 꿈을 키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내벤처란 새로운 사업 개발을 목적으로 기존 조직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기업 내 또 다른 회사다. 기존 조직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사업을 추진해 사내벤처로 육성하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인터넷 붐이 일면서 인터넷 사업 사내벤처가 급증했다. 현재 인터넷 공룡 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도 삼성SDS의 사내벤처에서 시작했다.
SK플래닛은 플래닛엑스(PlanetX)라고 이름붙인 사내벤처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1년 10월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약 60여개의 제안서가 접수됐고, 그 중 37건이 발표됐다. 이 중 사업화된 것은 백은수씨의 아이마그넷을 포함해 8개가 있다.
진행 방식은 이렇다. 격월로 진행되는 플래닛엑스 데모데이에서 참가자들을 받는다. 회사 모든 구성원이 발표장에 찾아 참관하거나 온라인 생중계로 참가자들의 발표 내용을 듣고 평가할 수 있다. 가수들이 경연을 펼치고 청중단의 평가를 받는 ‘나가수’ 프로그램과 같은 방식이다.
여기서 구성원들과 전문평가단으로부터 60% 이상 지지를 받은 제안서는 곧바로 인큐베이션(incubation·육성 프로그램) 단계로 넘어간다. 사업 시안 제작과 시장 테스트 비용, 업무 추진비 등 지원을 받고, 독립된 사무공간을 제공하고 이동발령을 통해 시안 제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완성된 시안은 2차 데모데이에서 재평가 과정을 거치고 70% 이상 지지를 이끌어내면 전담팀이 꾸려지고 본격적인 창업을 위한 금액적 지원과 사내 유관 부서의 협력 지원이 제공된다.
백은수씨는 “벤처를 직접 꾸리기엔 사회적인 지원도 약해서 어려움이 많다”며 “사내벤처는 사내 다른 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때문에 출발선상에서 한발 앞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SDS도 벤처 기업 발굴 프로그램인 에스젠(sGenㆍSmart Idea Generation)을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독립적인 사무공간과 IT 인프라스트럭처, 영업·마케팅·기술 등 분야별 멘토링을 아끼지 않고 있다. 법률 자문까지 지원하고 있다. 매회 평균 1000건이 넘는 지원자가 나오고 있다.
소프트웨어기업 이스트소프트도 임직원들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체계적인 벤처 창업 지원을 위해 `이스트글로벌`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이스트소프트와 계열사에 1년 이상 근무한 임직원이면 누구나 사업 아이디어를 본사에 제안할 수 있다.
사업을 구체화해 분사된 벤처 기업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근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분사된 자동차 외장수리 견적비교 서비스 ‘카닥’이 대표적인 예다. 카닥은 자동차 애프터마켓(after market)에 진출했다. 애프터마켓은 단순 상품 판매가 주를 이뤘던 1차 시장의 뒤를 이어 형성된 2차 시장을 말한다.
카닥은 다음의 사내 벤처 육성 조직인 ‘다음 넥스트 인큐베이션 스튜디오(NIS)’에서 나온 첫 번째 프로젝트다. 카닥은 2012년 11월 사내 공모전에서 처음 선정되고 지난해 3월 정식 출시됐다. 다음은 카닥 이용자들의 월간 견적 요청건수가 3000건을 넘었다고 밝혔다. 누적 견적요청수는 약 2만건이다. 다음 관계자는 “특히 수입차 운전자들에게 인기가 좋다”며 “국내 수입차 운전자의 15% 정도인 12만명이 카닥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육성된 사내벤처들의 분사 되고 나서의 사후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분사된 이후에 지원이 끊겨 실패를 맛보는 사내벤처들이 많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기업이 투자를 계속해 적극적으로 육성해나가야 제2의 네이버와 같은 벤처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