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유료 방송시장을 장악해온 '케이블TV 제국(帝國)'이 흔들리고 있다. 유료 방송은 매월 일정액을 받고 수십 개의 채널을 각 가정에 보내주는 서비스로 케이블TV·위성방송·인터넷TV(IPTV) 등이 있다.
1995년 개국한 케이블TV(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2003년 1000만가구를 돌파한 뒤 2008년 전국 가구의 75%가 넘는 1500만 가입 가구를 확보했다. 90년대만 해도 케이블TV는 주로 중소기업이 운영했지만 급성장 과정에서 태광·CJ·현대백화점 등 중견 그룹사들이 인수·합병전에 뛰어들며 대기업 계열사 위주로 재편됐다.
하지만 케이블 성장 신화는 이제 멈췄다. 가입자 수는 2009년 9월 1536만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어 작년 말 1508만가구로 줄었다. 업계에선 이미 1500만가구 밑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IPTV·위성방송 등 경쟁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견제하는 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케이블TV의 불공정 영업 관행에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 제동을 걸었다.
◆"협박해 케이블TV의 파워를 지키는 방식은 안 통해"
지난 2008년 10월 티브로드(태광), CJ헬로비전(CJ), 현대HCN(현대백화점) 등 5개 대형 케이블TV업체(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은 투니버스·OCN·온스타일·온게임넷 등 인기 채널을 보유한 방송 채널 2위 온미디어(현재 CJ E&M으로 흡수 합병됨)에 대한 불이익 주기에 나섰다. 온미디어가 자신들의 경쟁자인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IPTV에 채널을 공급한 데 대한 '괘씸죄'였다.
MSO의 임원은 공정위 조사에서 "방송 채널들에 IPTV로 가면 SO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5개 MSO는 2009년 방송 채널 재계약 때 온미디어의 채널 일부를 편성에서 제외했다.
공정위는 지난 15일 이런 행위가 IPTV의 영업을 방해한 불공정 담합이라며 5개 MSO에 9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권철현 과장은 "유료 방송 경쟁력 핵심인 콘텐츠시장의 2위 업체가 IPTV로 가자 SO들이 본때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MSO의 당시 협박은 성공했을까. 올해 3월 방송 채널 1위 CJ E&M은 tvN·채널CGV·Mnet 등 인기 채널들을 IPTV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방송 채널의 한 관계자는 "협박해서 IPTV로 못 가게 막는 방식은 이제 안 통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KT 등이 CJ E&M에 채널 공급 대가로 수백억원대의 사용료를 제공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반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의 홍명호 국장은 "IPTV가 스스로 콘텐츠 투자를 하지 않고, 케이블TV에 있던 기존 인기 채널을 가져다가 사업하는 형태가 옳은 일인가"라며 "IPTV와 케이블이 서로 다른 채널을 편성해야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보고 보다 좋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IPTV·위성방송 등 경쟁자의 견제에 흔들리는 케이블
케이블TV의 성장 신화가 멈춘 데는 IPTV 등장으로 '독과점 구조'가 깨졌기 때문이란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2000년대 이후 정부는 지역별로 1개 사업자만 케이블 사업권을 갖도록 해 독과점을 보장했다.
하지만 2008년 말 IPTV가 등장하자 독과점이 약해졌다. KT는 위성방송사업자 KT스카이라이프와 함께 소비자에게 IPTV와 위성방송을 한꺼번에 제공하는 상품을 1만2000원에 내놨다. 일부 지역에선 케이블TV보다 저렴한 5000~6000원의 초저가로 판매하기도 했다. 지난 3년 새 IPTV와 위성방송은 각각 300만 가입 가구를 넘어 케이블 대체재로 성장했다.
또 IPTV는 전국 어디서나 가입자를 모집할 수 있지만 케이블TV는 사업권을 가진 지역에서만 영업할 수 있어 경쟁에 불리한 측면도 있다. 정부는 케이블TV 사업권을 전국 77개 구역으로 쪼개고 한 업체가 3분의 1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케이블TV업체들은 'IPTV와의 공정 경쟁'을 내세워 권역 제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상파들의 케이블 견제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지상파들은 SO들이 자사의 채널을 허락 없이 전송해 이익을 챙겼다며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