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가 국산 우주발사체의 상용 발사가 가능하도록 짐칸에 해당하는 페어링을 키우는 개량 작업에 착수했다. 당초 우주항공청의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추진하려 했다가 우선 순위에서 밀리자 자체 투자로 페어링 개량에 착수한 것이다. 한화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고도화사업의 체계종합기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4일 우주항공 업계와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누리호 페어링 개량 사업에 착수했다. 페어링은 발사체 가장 앞쪽에 달린 탑재체 보호 덮개로 인공위성을 감싸고 있다. 페어링 내부에는 인공위성을 탑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누리호의 경우 지름 2.7m, 길이 4m 정도다.
그동안 누리호가 소형위성을 싣고 발사할 때는 페어링 크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를 상업용 발사체로 사용하기에는 지금 페어링이 너무 작다고 판단했다. 회사 관계자는 “상업용 발사체로서 누리호의 문제는 탑재할 수 있는 화물의 중량이 아니라 부피”라며 “탑재 중량이 남아도 페어링이 작아서 중형급 위성 1기밖에 실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누리호는 지금까지 중형급 위성 2기를 한꺼번에 싣고 발사한 적이 없다. 국내 인공위성 발사 수요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현재 페어링 크기로는 중형급 위성 2기를 한 번에 실을 수 없는 한계도 있었다. 올해 11월로 예정된 누리호 4차 발사 때도 중형급 위성은 차세대중형위성 3호 한 기만 탑재하고 나머지는 초소형 큐브위성들로 채울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7년 예정된 6차 발사 이후에는 누리호의 성능 개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업용 발사체로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페어링 크기를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중량이나 부품을 덜어내는 등 최적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누리호를 개발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주무 부처인 우주청에도 누리호 성능 개량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밝혔다.
우주청도 지난해 누리호 성능 개량 사업을 정부 R&D 과제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실제 예산안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체 투자로 페어링 크기를 키우는 작업부터 진행하고, 이후 본격적인 성능 개량 사업은 우주청, 항우연과 추가 협의를 거쳐 진행하기로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설계를 바꿔 페어링 크기를 키우면 중형급 위성 2기를 수직으로 탑재할 수 있다”며 “페어링 개량 사업은 더 지연되면 안 된다는 판단에 자체 투자를 통해 먼저 착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청도 누리호 성능 개량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이미 내부에 누리호 성능 개량과 추가 발사 계획을 검토하는 태스크포스(task force, 특별작업반)도 만들었다. 다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항우연 간 누리호 기술이전료 협상이 끝나지 않았고, 누리호 추가 발사 계획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청이 성능 개량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우주청 관계자는 “누리호는 중형급 위성을 여러 기 실어도 동일 궤도에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위성 수요가 제한적인 게 한계”라며 “성능 개량 사업을 비롯한 누리호 추가 발사 계획은 인공위성 수요와 기술이전료 협상 결과 등을 토대로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우주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주청이 너무 여유를 부린다고 지적한다. 김정수 부경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누리호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실질적인 성능 개량을 위한 고도화 사업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우주청이 만든 우주수송 부문 전략서를 보면 누리호 7~9차 발사 계획을 2027년에 세운다고 돼 있는데, 그렇게 되면 발사 공백이 길어져 누리호 부품을 만드는 국내 기업들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누리호 6차 발사 이후 계획을 빨리 수면 위에 올려서 논의해야 한다”며 “실질적인 누리호 고도화 사업을 위한 추가 재원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도 “충분한 수요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체계종합기업의 사명감을 갖고 먼저 투자하고 있지만, 정부의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