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 버뮤다 제도 근처에서 임신한 악상어가 사라졌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항공기가 사라졌던 미스터리가 바다 속에서도 일어난 것일까. 놀랍게도 상어가 다른 대형 상어에게 잡아먹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실로 확인되면 심해에서 큰 상어가 다른 상어를 포식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첫 번째 사례일 수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양수산부와 오리건 주립대 공동 연구진은 “2020년 10월부터 임신한 악상어에 추적 장치를 부착해 상어의 이동 경로를 연구한 결과, 다른 대형 상어에 잡아먹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3일 국제 학술지 ‘해양 과학의 최전선(Frontiers in Marine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약 2.2m 길이의 임신한 악상어에 깊이와 온도를 측정하는 센서 장치를 달았다. 이 장치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개체에서 떨어져 수면으로 떠올라 데이터를 전송한다. 이번에 사용한 장치는 상어에 부착한 지 5개월 만에 수면으로 올라와 데이터를 보냈다.
처음 5개월간 얻은 상어의 행동 정보를 분석한 결과, 상어는 낮에는 600~800m, 밤에는 100~200m 깊이에서 헤엄쳤다. 이 과정에서 수온은 섭씨 6.4~23.5도 사이에서 변했다. 하지만 2021년 3월 말부터 데이터가 변하기 시작했다. 임신한 상어가 돌아다니는 깊이는 비슷했으나, 주변 온도가 22도로 일정하게 유지됐다. 온도뿐 아니라 헤엄 형태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데이터에 남은 헤엄 형태나 체온이 백상아리의 것과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적 장치가 달린 채로 임신한 악상어 개체가 백상아리에게 먹힌 것이 분명하다”며 “이 지역에서 악상어만 한 개체를 공격할 포식자는 백상아리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악상어는 몸길이가 최대 3.36m 내외지만, 백상아리는 최대 몸길이는 6.5m에 달하는 지상 최대 상어이다. 만약 연구진의 추측이 맞다면, 이번 사례는 보통 약 300m 깊이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백상아리가 더 깊은 바다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는 단서가 된다. 백상아리가 악상어가 낮에 활동하는 600~800m까지 돌아다녔다는 의미다.
제임스 술리코프스키 미국 오리건 주립대 교수는 “상어끼리의 포식은 비교적 흔하지만, 이번처럼 심해에서 상어를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며 “다른 상어가 악상어를 잡아먹은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악상어는 서식지 훼손이나 부수어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데다, 임신한 암컷 상어와 태아들이 한 번의 포식으로 사라질 수 있어 개체군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브룩 앤더슨 노스캐롤라이나 해양수산부 연구원은 “이번 발견은 상어의 포식을 계속 연구하고 실제로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준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의 포식자가 백상아리라고 단정 짓기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크리스 로우 미국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실제 범고래가 큰 상어를 먹는 사례가 있었다”며 “포식 사건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데이터를 보지 않고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Frontiers in Marine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3389/fmars.2024.1406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