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침팬지와 보노보를 연구한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75) 미국 에모리대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드 발 교수는 동물 인지 연구를 개척하고, 유인원 안의 인간 본성을 세상에 알린 학자로 여겨진다.
에모리대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드 발 교수에 대한 추모 성명을 통해 드 발 교수가 지난 14일 위암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드 발 교수가 나오기 전까지는 동물이 사회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한다는 인식은 과학계에서 터부시됐다. 신경과학자인 도널드 그리핀이 1976년 ‘동물 인식의 문제’라는 책을 내면서 동물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지만, 이 문을 활짝 연 건 드 발 교수였다.
드 발 교수는 평생 침팬지와 보노보, 카푸친 원숭이를 연구하며 영장류와 인간의 행동을 비교하는 수백 편의 논문을 썼다. 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하고, 협력하고, 공감하는 인간 능력의 뿌리가 영장류에게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는 평생 16권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했다. 연구자로만 남지 않고 대중에게 영장류와 인류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드 발 교수는 생전에 자신의 연구에 대해 “원숭이는 조금 위로, 사람은 조금 아래로 이동시켜서 유인원과 인간을 조금 더 가깝게 만들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드 발 교수의 책은 한국에서도 여러 권이 번역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침팬지 폴리틱스’ ‘차이에 관한 생각’은 여전히 국내 자연·과학 서적 가운데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책이다.
드 발 교수는 실험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해 사람들에게 보다 생생하게 연구 결과를 전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오이와 포도’ 실험이다. 드 발 교수와 사라 브로스넌 박사는 카푸친 원숭이에게 돌멩이를 가지고 오면 오이와 바꿔주는 실험을 했다.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오이에 만족해 열심히 돌멩이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일부 원숭이에게는 오이 대신 포도를 주자 상황이 바뀌었다. 원숭이는 단맛이 강한 포도를 오이보다 좋아하는데, 일부 원숭이에게만 포도를 주자 다른 원숭이들이 오이를 받는 걸 거부하고 연구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오이와 포도’ 실험은 원숭이에게도 공평함에 대한 인식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드 발 교수는 이 실험을 영상을 촬영해 공개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브로스넌 박사는 “드 발 교수는 TED 강연에도 ‘오이와 포도’ 실험 영상을 사용했다”며 “드 발 교수는 단순히 텍스트만 읽는 게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을 함께 활용하도록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프란스 드 발 교수의 '오이와 포도' 실험 영상이 담긴 TED 강연]
드 발 교수는 인간 내면의 가능성을 믿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내 안의 유인원’이라는 책에서 침팬지와 보노보의 서로 다른 성향을 분석하며 인간의 본성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드 발 교수는 “인간은 행동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고약하고 공격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주장을 믿지 말아달라”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 발 교수는 2007년 타임이 선정한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1년 디스커버가 선정한 ‘47인의 과학계의 위대한 지성’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