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환 홍릉강소특구 단장은 지난 19일 “홍릉특구는 출범 이후 3년이 조금 지났지만 그간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며 “현재는 300곳이 넘는 기업이 입주해 있고 29개의 투자기관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릉특구는 2020년 서울 지역 유일의 강소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된 바이오클러스터다. 신약개발부터 디지털 헬스케어까지 다양한 의료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 이곳의 산·학·연·병 협력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홍릉특구의 시작은 바이오클러스터였지만 최종 목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가 융합하는 시대가 열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지능(AI)이다. 구글의 AI 연구기업 딥마인드가 개발한 단백질 구조 예측 모델 ‘알파폴드’는 십수년이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을 수년 이내로 단축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가 창업한 신약개발 기업 이소모픽랩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하려면 단순히 바이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소모픽랩의 사례처럼 양자·AI·빅데이터 같은 첨단 기술과의 융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이를 지원하는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임 단장은 “지금 기술 산업계의 큰 화두는 AI, 양자, 바이오”라며 “홍릉은 양자사업단, 뇌과학연구소·메디칼연구소가 있어 융합 기술이 계속 발전한 지역이었다”고 말했다. 홍릉특구가 국내 딥테크 융합 생태계의 중심지가 될 잠재력을 충분히 갖췄다는 의미다.
융합 클러스터를 향한 홍릉특구의 발걸음은 이미 시작됐다. 12대 국가전략기술에도 선정된 양자과학기술이 첫 번째 타자다. 홍릉특구는 홍릉 일대에 구축하고 있는 퀀텀밸리 사업과 연계해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홍릉특구의 기술핵심 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고려대의 양자 연구 기반도 활용할 수 있다. KIST가 구축하고 있는 양자팹과 양자패키징실을 이용해 입주 기업의 양자 생산을 지원하고, 고려대 양자대학원이 인력을 담당하는 구조다.
양자과학기술 분야 기업들도 홍릉특구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노광석 고려대 교수가 창업한 큐심플러스는 양자 암호통신 전송 장비와 내부에 들어가는 모듈을 개발하고 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양자 분야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도 개발 중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 2023′에 양자통신 검증용 시뮬레이터를 출품해 혁신상을 받았다. 척박한 국내 양자 산업 환경에서도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노 교수는 홍릉특구에 입주하게 된 이유로 우수한 인프라를 지목했다. 그는 “홍릉특구에 속해 있는 KIST와의 협력이 입주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라며 “KIST 양자정보연구단을 자주 방문해 자문도 많이 얻고 사업 관련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추후 완성될 KIST의 양자팹, 양자패키징실을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한몫했다. 홍릉특구에서 운영하는 입주기업 지원 프로그램도 기술 개발에 열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노 교수는 “지난해 10월 홍릉특구의 창업경진대회 그랜드K(GRaND-K)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바우처 사업의 혜택도 누렸다”며 “홍릉특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릉특구는 양자와 바이오를 융합해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산업 기술을 개척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양자 관련 기술 교육 사업을 통해 기업과 대학·연구기관의 연계를 추진해 융합 클러스터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임 단장은 “양자 센서는 생체 분자 감지를 통한 고화질 이미징, 양자 컴퓨터는 유전자 공정이나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양자 분야의 기획 창업을 장려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융합 클러스터로 확장을 준비하면서도 본래의 취지인 바이오 클러스터로서의 역할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임 단장의 생각이다. 홍릉특구가 한국을 대표할 융합 클러스터로 성장하기 위한 여러 전략이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우선적으로는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서로의 성장동력이 되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임 단장은 “창업 기업들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만나 협력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기술설명회를 통해 대웅제약, 한국콜마 같은 기업들과 입주 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동아ST와 기술이전 조인식을 갖고 기술 상용화 협력을 약속했다. 홍릉특구 입주 기업과 이들이 보유한 유망 기술을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확장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외에도 바이오 기업들에게 필요한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컨설팅 플랫폼, 해외 진출 플랫폼도 운영해 입주 기업들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로 4년 차를 맞는 홍릉특구가 그간 기업 성장 플랫폼을 구상하고 구축해 왔다면 앞으로는 본격적인 성과 확대에 집중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글로벌 바이오 클러스터와 경쟁하는 한국형 융합 클러스터로 자리 잡는다는 거대한 목표도 공언했다.
임 단장은 “이미 프랑스, 싱가포르의 클러스터에서 협력하자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홍릉특구의 위상이 높아졌다”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좁은 공간에 인프라가 밀집해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오에서 시작해 양자를 거쳐 진정한 융합 클러스터로 나아가는 홍릉특구의 미래는 어떨까. 임 단장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업 분야가 탄생하는 요람으로 홍릉이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다. 그는 “서울이 강점으로 가진 AI, 로봇을 바탕으로 바이오와의 다양한 접점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딥테크 분야의 신산업을 발굴하고 다양한 기업이 활약할 수 있도록 기업 연계,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