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사는 아마미 토끼의 모습./Aleš Buček(CC BY 4.0)

‘검은 토끼해’로 불리는 계묘년을 맞아 세계에서 유일한 검은 야생 토끼종인 ‘아마미 토끼’가 희귀 식물의 종 보존에 기여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스에츠구 켄지 일본 고베대 이학대학원 교수 연구진은 지난 23일 아마미 토끼가 희귀한 식물을 먹고 배설물로 씨앗을 퍼뜨리는 것을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생태학’에 소개했다. 아마미 토끼는 개체 수도 적고 야행성이어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는데 생태적 역할이 이번에 확인되면서 개체 보호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멸종 위기에 처한 아마미 토끼

세계 유일의 검은 야생 토끼종인 아마미 토끼는 아마미검은멧토끼, 류큐토끼라고도 불리는 일본 고유종이다. 일본 남쪽 류큐 제도의 200여 개에 달하는 아열대성 섬 중에서도 ‘아마미섬’과 ‘도쿠노섬’ 두 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아마미 토끼는 평균 2kg 내외로 털이 검고 일반적인 토끼보다 귀와 발, 뒷다리가 짧고 눈이 작다. 고대 토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마미 토끼는 낮에는 땅굴에 숨어 있다가 밤에 먹이를 찾는 야행성 동물이다. 이런 이유로 그간 생태 관찰이 쉽지 않았다. 스에츠구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땅속에 몰래 적외선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밤에 활동하는 아마미 토끼의 모습을 포착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아마미 토끼는 ‘발라노포라 유와넨시스(Balanophora yuwanensis)’라고 불리는 희귀한 식물을 먹었다. 새나 대부분의 포유류같은 씨앗을 퍼뜨리는 동물은 과육이 많은 과일을 먹는다. 그러나 아마미 토끼는 특이하게 비교적 수분이 적어 마른 듯한 모습의 발라노포라 유와넨시스를 자주 먹었다. 식물을 소화시킨 뒤에는 땅을 파고 배변을 했다.

연구진은 “현장에서 수집한 아마미 토끼의 모든 배설물에는 해당 식물의 씨앗이 들어있었다”며 “충분히 식물로 클 수 있는 손상되지 않은 씨앗이었다”고 밝혔다. 아마미 토끼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땅을 파고 씨앗을 여기저기 심는 일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일본 고베대 연구진이 적외선 카메라로 관찰한 아마미 토끼의 모습./일본 고베대

◇ 베일에 싸인 아마미 토끼의 생태, 일본 연구진이 밝혀

발라노포라 유와넨시스는 마치 작은 버섯 위에 딸기가 얹어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기생 식물의 한 종류로 광합성을 하지 않고 다른 식물에 붙어살며 양분을 빼앗아 먹는다. 연구자들은 발라노포라 유와넨시스가 땅 가까이에서 자라고 씨앗이 작아 어떻게 널리 퍼질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연구진은 이번에 아마미 토끼가 씨앗을 퍼트리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포유류가 기생 식물의 씨앗을 퍼뜨리는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토끼는 과일보다 잎을 먹는다는 보편적인 생각 때문에 씨앗을 퍼뜨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간과됐다”며 “이전에 알아채지 못했던 아마미 토끼의 역할을 발견한 만큼 앞으로 또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스에츠구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마미 토끼와 희귀 식물 사이의 오랜 관계를 발견한 것”이라며 “아마미 토끼의 손실은 전체 생태계에 파급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미 토끼는 특정 지역의 상징적인 야생 동물을 뜻하는 ‘깃대종(flagship species)’으로 지정됐다. 보호 필요성이 인정되는 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야생 고양이와 개 등 외래종이 섬에 들어오면서 개체 수가 급감했다. 1996년, 2008년에 이어 2016년에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에 올랐다.

IUCN은 2016년 아마미 토끼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발표했다. 2016년을 기준으로 아마미섬에는 약 5000마리, 도쿠노섬에는 약 400마리의 아마미 토끼가 살고 있다고 추정됐다.

기생식물 발라노포라 유와넨시스(Balanophora yuwanensis)의 모습. 왼쪽은 온전한 개체, 오른쪽은 아마미 토끼가 먹은 뒤의 개체다./일본 고베대, Yohei Tashiro

[희귀 기생 식물인 발라노포라 유와넨시스를 먹는 아마미 토끼의 영상]

참고 자료

Ecology, DOI: https://doi.org/10.1002/ecy.3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