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이 헬기로 수송 중인 환자를 기다리고 있다./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10년 전만 해도 중증 외상 환자를 전담하는 기관은 전국에 인천 한 곳뿐이었다. 인천 권역의 중증외상 사고 환자를 책임지는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가 2014년 국내 최초로 문을 열었다. 지금은 아주대병원(경기 남부), 단국대병원(충남),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강원) 등 17곳으로 늘었다.

조선비즈가 방문한 가천대길병원, 아주대병원,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의료진의 일상은 거의 같았다. 언제, 어떤 사고를 입은 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니 24시간 비상 대기다. 의료진은 매일 낮과 밤으로 나눠 당직 근무를 하고, 긴급 출동을 위한 닥터헬기 당직도 선다.

중증 외상 환자는 단독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형 교통사고로 인해 다수 환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에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올 수도 있어 낮에는 보조 당직도 서야 한다. 가히 살인적인 근무 환경이지만 개선될 조짐도 없다. 의료진은 “사람이 버텨서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게 권역외상센터의 현실”이라며 “한 명이라도 빠지면 큰 타격이 생기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이 외상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단국대병원

◇살인적 근무 조건, 당직 마쳐도 퇴근 못 해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12명의 외상 전담의가 3~4명씩 팀을 짜 매일 24시간 당직을 선다. 한 달에 8번 24시간 환자를 본다는 얘기다. 환자를 이송하는 119나 주변 병원에서 외상 환자를 전원할 때 전화를 거는 핫라인 폰, 외상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질 때마다 알릴 때 쓰는 콜 폰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는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의 수면 패턴은 망가져 있다”며 “환자가 안 오는 틈을 이용해 잠을 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의 목숨을 살렸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환자 상태와 경과를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속 응급의학팀은 18명이 3명씩 당직을 선다. 수술에 필요한 온콜(응급 호출) 당직을 서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9명에 달한다. 하루 꼬박 밤을 새운 당직 다음 날 바로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경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권역외상센터는 이송된 환자를 당장 수술해서 살려낸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지금도 우리 센터에는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환자가 8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7년 전국에 17개 권역외상센터를 선정했다. /보건복지부

◇의료진 규모에 따라 권역별 운영 편차 커

정부가 전국에 외상센터를 권역별로 17곳이나 둔 것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중증외상 환자를 골든타임(사고 발생 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시간·골든아워) 안에 치료해 살리기 위해서다. 각 센터는 수술방을 비워두고 의료진이 상시 대기해야 한다.

하지만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곳도 많다. 아주대병원과 가천대길병원은 별도의 권역외상센터 건물과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처치실과 수술방을 응급실과 함께 사용한다. 전국 권역외상센터의 시설 운영과 근무 환경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인력 편차도 크다.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는 외상 전담 전문의가 21명이다. 아주대병원과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도 외상 전담 전문의가 각각 18명, 12명 근무한다. 하지만 이 병원들을 빼면 권역외상센터 대부분이 외상 전담 전문의가 10명이 채 안 된다.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 고르게 외상센터를 설치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취지를 살리기 힘든 상황이다.

의료진들은 외상센터도 수도권과 멀어질수록 의료 인력난이 심한 편이라고 했다. 이 탓에 해당 권역에서 발생한 환자를 받지 못하고 타지역으로 전원하는 일도 많다. 현성열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원칙은 인천 권역 환자가 우선이지만, 여력이 되면 최대한 타 권역 환자도 받고 있다”며 “우리가 안 받으면 그 환자는 사실상 갈 곳이 없다”고 했다.

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조교수는 “권역외상센터 설립 취지와 목적상 권역 내 중증 외상 환자만 받는 게 맞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역 외 사고 현장 구급대원들이 해당 지역에 해당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못 찾아 받아 달라며 읍소하거나 밀고 들어오면 이를 거절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이 수술실에서 외상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인력 부족한 권역센터 통폐합도 고려할 만”

권역외상센터를 지키는 의료진들은 “정책적 뒷받침없이 각병원들이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권역외상센터가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되려면 정부가 꾸준히 제도를 발전시키고 지원을 이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권역외상센터는 인건비, 시설, 장비 등 인프라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운영된다. 올해 전국 17곳 권역외상센터 운영 지원 사업 예산은 전년보다 약 15% 늘어 총 663억원7000만원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단적인 예가 외상외과와 다른 과의 협진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간호사 지원 기준이다. 현재 가천대길병원, 아주대병원을 제외하곤 대부분 외상 협진 코디네이터를 3명만 두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권역외상센터 내 코디네이터 수가 3명으로 제한돼 있고, 그 이상은 병원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윤정 교수는 “전문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간호 인력, 외상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정부의 인건비 지원 기준으로 인해 필요한 인력을 더 늘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병원들도 힘들기 때문에 병원 탓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일부 권역센터를 통폐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증외상센터를 전국에 고르게 둬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예산과 인적 자원 등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인력 상황에 맞춰 통폐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