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에 와서 서울대 의대에서 배운 해부학 내용이 그대로 전시돼 있어서 신기했어요. 이란에서 놀러온 가족들이 저를 무척 자랑스러워 하네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서 만난 마리얌 야바타누씨는 “이란에서 한국에 놀러온 가족들에게 내가 다녔던 학교를 보여주기 위해 의대에 들렀다가 해부학교실 전시를 한다고 해서 오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야바타누씨는 이란에서 의과학을 공부하고 2010년 서울대 의대에서 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의학박물관에서는 지난 16일부터 국내 해부학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해부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올해 77주년을 맞은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과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이번 특별전은 11월 18일까지 열린다.
김학재 의학박물관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은 “신동훈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님의 제안으로 현재 해부학교실에서 보관 중이거나 기증받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게 됐다”며 “병원 소속인 의학박물관이 의대의 특정 교실과 함께 여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식 병원인 대한의원 본관에 자리하고 있다. 1907년 고종 황제의 칙명으로 설립된 뒤 1946년 서울대 의대로 통합되면서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이 됐다. 의학박물관은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이 소장하고 있던 의학 관련 유물과 문서를 연구하고 전시할 목적으로 1992년 이 건물 2층에 문을 열었다.
이번 특별전은 국내 해부학 교육·연구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2개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첫 번째 방에는 1952년 서울의대 해부학교실의 이명복 교수와 성기준 교수가 직접 철필로 쓴 국내 최초 해부학 교과서인 ‘맥관학 해부실습’과 국내 첫 조직학 실습용 조직 표본 세트가 전시돼 있다.
두 번째 방에 들어서자 좀 더 익숙한 모습이 펼쳐졌다. 현재 서울대 의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해부학교실의 모습이다. 현미경으로 사람의 발바닥 피부 조직을 관찰하는 체험 공간으로 시작됐다. 해부학교실 소개 영상으로 시작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의대 해부학교실 학생들이 이른바 ‘땡시’를 치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의대 학생들은 해부한 시신에 붙은 끈이나 스티커, 핀을 보며 출제된 30개 문제의 답을 단 30초 안에 써내는 실습시험을 치른다. 30초마다 벨이 울리면 다음 시험문제 위치로 이동해야 해서 ‘땡시’라고 불리는 시험이다. 메스와 수술 가위, 포셉 등 등 해부학 도구를 이용해 방부처리된 카데바(시신)를 해부하는 본과 1학년 실습 내용도 소개됐다.
최근 해부학교실에 도입되고 있는 가상현실(VR) 교육도 소개됐다. 해부된 인체 구조를 3차원 입체 모형 콘텐츠로 개발해 학생들이 VR기기를 착용하고 가슴을 열어 빠르게 뛰는 심장과 그 안에 판막이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박물관측은 조만간 VR 해부학 교육 체험 장비도 설치해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다.
같은 방 한편에는 미래에 발전될 혁신 기술도 전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유전자 변이를 교정·치료하는 연구나 생체 현미경이라는 새로운 조직학 분석 기법을 통한 신약개발 연구,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인공 소형장기) 기반의 정밀의료 플랫폼 연구도 소개됐다.
이날 전시장에는 평일 이른 시간에도 병원을 찾은 환자를 비롯해 일반인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루 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는 염정순씨는 “다리 부종 수술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데 오늘은 날이 좋아 산책 삼아 박물관에 들렀다”며 “2000년부터 23년간 서울대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이 전시를 보니 서울대병원이 참 많은 발전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6개월 딸과 함께 방문한 구경모씨는 “딸이 아파서 오늘 외래 진료를 예약했는데, 대기 시간이 좀 길어서 잠깐 구경차 들렀다”며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이 잠시 한국 근현대 의학의 역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방문객 중에는 환자분들도 많지만, 고등학교 보건의료 동아리들에서 단체 견학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