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개인의 유전체 정보와 환경별 특성을 고려한 질병 치료·예방을 위한 ‘정밀의료’ 활성화를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밀의료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사회적 문제가 맞물려 발생하는 의료분야 재정 부담을 덜어 줄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꼽힌다. 암이나 희소질환처럼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을 조기에 예방하는 게 핵심이다.
정밀의료의 첫 단추는 개인의 의료 데이터 확보다. 비용과 개인정보 문제를 고려하면 개별 기관이나 산업계가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세계 각국 정부가 주도해 통합 데이터 플랫폼 마련에 나선 배경이다.
영국은 정밀의료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2006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국민 바이오 데이터 수집에 나섰다. 미국은 100만명 이상의 다양한 인종 데이터를 확보했다. 핀란드의 경우 전체 인구 대비 약 10%에 달하는 유전체 데이터를 모았다. 한국도 고성장하는 바이오헬스시장 선점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데이터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라는 제언이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 미래의료연구부장 “영국이 가장 먼저 바이오 데이터 구축에 나섰고, 미국은 다양한 인종을 바탕으로 막대한 데이터를 확보했다”며 “핀란드의 경우 전체 인구수 대비 확보 데이터로는 가장 앞섰다”고 평가했다.
◇100만명 바이오 데이터 쓸어 담는 美 ‘올 오브 어스’
18일(현지 시각) 미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의학 연구와 발전을 위해 시작한 ‘올 오브 어스(All of US)’ 연구 프로그램 지원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올 오브 어스는 100만명의 보건의료 데이터 수집을 목표로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다. 지난 2015년 버락 오마바 정부가 개인별 특성에 따른 맞춤형 치료와 예방을 목표로 추진한 ‘정밀 의료 이니셔티브(PMI)’가 시작이다. 이날 기준 참가자가 100만명을 넘어섰으니 참가자 모집 기준으로는 이미 목표치를 뛰어넘었다.
전체 참가자 가운데 절반가량인 45만8000명 이상은 프로그램 초기 단계를 완료했다. 초기 단계는 프로그램 참여와 정보제공 동의부터 신장, 체중, 혈압과 같은 신체 측정과 같은 절차를 포함한다.
미국이 추진하는 올 오브 어스는 100만명이라는 규모와 함께 ‘다양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백인부터,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을 비롯, 다양한 인종을 포함하고 있다.
올 오브 어스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는 지난해부터 연구자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약 10만명 이상에 달하는 유전체 데이터는 개인별 건강기록, 임상 시험 측정값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연구자들은 막대한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질병 위험을 줄이고, 희소질환에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英, 2006년부터 50만명 데이터 담은 ‘바이오 뱅크’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의료 정보 수집에 나선 국가다. 지난 2006년부터 2013년 40~69세 성인 50만명에 대한 건강과 생활 습관 설문 조사, 검진을 통한 역학조사, 인체 자원을 수집했다. 이른바 ‘10만 게놈 프로젝트’다.
대규모 코호트(동일 집단)를 구성해 진단, 치료, 의약품 개발에 활용하는 데이터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환자 맞춤형 의료를 제공한다는 목표다. 이는 지난 2012년 10만명 규모의 전장 유전체 시퀀싱 결과와 국민보건서비스(NHS) 의료자원의 연계로 희소질환, 암, 전염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 성과로 이어졌다. 확보한 데이터를 외부에 개방해 얻은 성과다. 암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리제네론과 같은 빅파마도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고 있다.
영국은 현재 지속적으로 데이터 공개를 확대하는 한편, 데이터 규모는 500만명을 목표로 확대·개편한다는 계획이다.
◇핀란드, 인구수 대비로는 최대 비율 데이터 확보
핀란드는 2017년 ‘핀젠(FinnGen)’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규모 정밀의료 프로젝트로, 게놈 정보와 핀란드 국민의 헬스케어 정보를 결합한 것이다. 질병을 가진 개인들로부터 수집됐다는 게 다른 정보와 차별성을 지닌다.
핀젠 프로젝트는 헬싱키 대학 주도로, 화이자와 애브비, 아스트라제네카, 바이오젠, 머크, 제넨텍, 셀젠까지 7개 빅파마의 펀딩으로 초기 구성했다. 그만큼 대형 제약사도 개인의 질병 정보를 원했다는 의미다.
핀란드가 핀젠 프로젝트로 확보한 유전체 데이터만 50만명에 달한다. 이는 핀란드 전체 인구수(약 530만명)의 약 10%에 해당한다. 인구 수 대비 비율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
국가가 나서 유전자 활용 사업을 주도하고, 통합·관리한다. 바이오뱅크법, 의료·사회 정보의 2차 활용법과 같은 입법으로 민간 지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유전자 정보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되자 GSK, GE와 같은 빅파마들이 핀란드로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