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생물학은 2000년대 초반부터 붐이 일었고, 합성생물학을 이용한 생물 공정을 도입하려는 기업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합성생물학을 사업화하기에는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신종오 전남대 생물학과 교수는 지난 3일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열린 ‘한국생물공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및 국제심포지엄’ 신진 연구자 포럼에서 “합성생물학이 과거 주춤했지만 지금은 전망이 달라졌다”며 “최근 자동화 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세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어 합성생물학의 물결이 다시 불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생물공학회 신진 연구자 포럼은 대학과 정부 연구기관 임용된 지 1년가량 된 연구자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생명공학 분야 신진 연구자 14명 중 9명은 합성생물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지난 2~3일 열린 학술대회의 발표 프로그램 중 많은 부분도 합성생물학을 주제로 진행됐다. 합성생물학에 대한 생물공학계의 관심이 그만큼 뜨겁다는 의미다.
합성생물학은 세포를 변형해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만드는 기술이다. 동·식물이나 세균(박테리아)의 물질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바꿔 세상에 없던 세포 공장을 만드는 셈이다. 주로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항체 의약품, 호르몬 등을 생산하는 데 활용됐으나, 최근에는 석유화학 공정을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가령 합성생물학 기술을 이용하면 석유에서 추출하던 화학물질을 미생물로 생산할 수 있다.
김동명 한국생물공학회 회장(충남대 교수)은 “전통적인 합성생물학은 물질 합성용 미생물 균주 개발과 공정 실험을 반복해야 해 연구개발(R&D)에 드는 시간과 노동력이 큰 분야였다”며 “최근에는 실험을 자동화하고, 데이터를 AI가 해석하는 방식이 도입되면서 실제 산업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말처럼 과거에는 생물 공정을 구현하는 시도가 숱한 실패로 좌절됐으나, 최근에는 기업들이 실적을 내면서 R&D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산업계도 합성생물학을 바탕으로 생물 공정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합성생물학은 생물 공정뿐 아니라 세포치료제,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개발에도 활용되는 기술”이라며 “앞으로 반도체, 이차전지와 더불어 한국의 먹거리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이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지난해 매출 4조5000억원, 영업이익 1조3000억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셀트리온(068270)도 지난해 매출 3조5000억원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63.45% 늘었다. 롯데그룹도 롯데바이오로직스에 4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식품과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생물 공정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CJ제일제당(097950)은 식품 업계 최초로 식품 바이오 파운드리를 구축하고 7개국에 공장 11곳을 운영 중이다. 효성티앤씨(298020)는 베트남에 생물 공정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효성티앤씨는 바이오 공정을 통해 석유화학 소재를 생산하는 화이트바이오 사업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합성생물학 육성법’을 제정했다. 지난 2일 합성생물학 육성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법 제정으로 정부는 합성생물학 육성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기술 표준화에 나서기로 했다. 합성생물학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국제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이상엽 국가바이오위원회 민간부위원장(KAIST 연구부총장)은 “앞으로 모든 바이오 산업에서 합성생물학 없이 경쟁력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인다”며 “지금까지는 바이오 산업의 발전 속도가 느려서 중간에 사업을 접거나 포기하는 경우들도 많았으나,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연구계가 협력해 성과를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