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우선 과제는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누겔(Nugel)’의 기술 수출입니다.”
성승용 샤페론(378800) 대표는 지난달 21일 조선비즈와 만나 “최근 미국 임상 2상 파트 1을 통해 경·중등증 아토피 환자군에서 누겔의 우수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 이를 바탕으로 여러 글로벌 제약사와 논의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샤페론은 서울대 의대 성승용 교수가 2008년 학내 벤처로 설립한 회사로, 2022년 10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아토피 피부염은 대표적인 만성 염증성 피부 질환이다. 면역 과민 반응과 피부 장벽 기능 저하가 주 원인이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는 약 60%가 만 15세 미만인데, 기존 치료제는 모두 부작용 위험이 있어 지속적인 사용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
누겔은 면역세포에만 존재하는 GPCR19를 표적으로 하는 염증 억제제다.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작용해 생기는 염증 반응을 근본적으로 조절하는 원리여서 부작용이 적다고 성 대표는 설명했다.
샤페론에 따르면 누겔은 3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미국 임상 2b상 파트1에서 치료 효과가 입증됐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지수인 ‘EASI 50(습진 중증도 평가지수)’은 투약 직전보다 50% 이상 개선된 환자 비율을 말한다. 임상시험에서 가짜약을 투여한 환자는 이 지수가 44.4%를 나타냈는데, 누겔 0.5% 투약군은 80%, 누겔 1% 투약군은 100%, 누겔 2% 투약군은 83.3%를 기록했다.
누겔의 임상시험 결과는 경쟁 약물을 앞선다. 미국 인사이트의 자카비는 임상 3상 시험에서 EASI 50 수치가 78.8%였다. 화이자의 유크리사는 68.8%, 아큐티스의 졸리브는 69.2%였다. 일본 오츠카의 모이제토는 58.24%에 그쳤다.
성 대표는 “지난해 미국에서 임상 2b상 파트1을 끝내고, 현재 파트2에 돌입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며 “3월부터 미국 기관에서 환자 등록에 돌입할 것”고 밝혔다. 임상 2b상 파트 2는 미국과 한국에서 규모가 대폭 늘어난다. 미국 내 4개 기관, 한국 4개 기관을 새롭게 추가해 총 12개 기관에서 177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성 대표는 서울대 교수로 있던 2004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리뷰 이뮤놀로지(Nature Reviews Immunology)’에 ‘인체에서 분자 쓰레기가 증가하면 그것이 염증의 원인이 된다’는 이론을 처음 발표했다. 그는 인체의 분자 쓰레기를 제어하는 물질이 염증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20년간 연구 끝에 누겔을 개발했다.
하지만 상용화는 쉽지 않다. 금리 인상 흐름과 국내 증시 부진, 자금 조달 시장 위축이 이어진 2023년과 2024년은 국내 바이오 기업에 유독 힘든 시기였다. 샤페론은 누겔의 미국 임상 2b상 연구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상장 이후 처음으로 작년 6월 유상증자를 했지만 목표 금액을 다 확보하지는 못했다.
신약 개발 과정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FDA 승인까지 평균 10년~15년이 걸린다. 비용은 8억달러(약 1조1000억원)가 든다.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만큼,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해 상업화를 노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샤페론도 마찬가지다.
성 대표는 “지난 1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만나 비밀 유지 계약을 맺은 회사들과 후속 미팅을 했다”며 “세계 피부과 부문 선두 다국적 기업을 포함해 11개 글로벌 제약사와 본격적인 기술 이전 협의를 진행해 이 중 일부 기업과는 현재 기술 실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샤페론은 연내 기술 이전을 비롯한 구체적인 사업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성 대표는 ”후속으로 진행될 파트 2의 결과까지 나오면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의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누겔이 성공적으로 출시되면 아토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성 대표는 누겔 기술 이전으로 다른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샤페론은 탈모, 항노화 등 다양한 치료 분야 신약 개발에도 나섰다. 회사는 지난해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도 구축했다. AI는 2억 4000만개에 달하는 저분자 화합물과 단백질의 구조, 생물학적 활성 데이터 등을 수집, 학습한다. 이를 통해 후보 물질을 발굴할 수 있다.
성 대표는 “최근 AI로 특정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 신규 화합물 개발에 성공했다”며 “동일 계열의 경쟁 물질보다 100배 이상의 높은 효능을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이 물질이 다양한 적응증 중 원형탈모증에서 탁월한 효과를 확인해 치료제로 개발 중이라고 했다. 성 대표는 “원형탈모증, 대사성 질환, 노화 관련 질환 등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추가적인 기술 이전 기회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