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바이러스 백신이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에서 좌절됐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의 노로바이러스 백신이 임상 3상 시험 도중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자 지난 주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상시험을 강제 중단했다. 회사는 참가자 1명에서 희소질환인 길랭-바레 증후군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병은 면역 체계가 말초신경계를 공격해 신경 손상과 근력 악화를 일으키는 신경 질환이다.
노로바이러스는 매년 7억명이 감염되지만 아직 백신 하나 개발되지 않았다. 바이러스 배양이 어려울 뿐 아니라 유전형이 많고 변이도 빨라 백신 개발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 제약업계는 기존 백신과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새로운 방식의 백신을 개발해 올해 임상시험에 잔입하는 목표를 세웠다.
◇전 세계 7억명 감염…승인된 백신은 ‘0′
노로바이러스는 음식물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성 위장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영하 20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살아남아 겨울철 식중독의 주요 원인이다. 설사, 구토, 복통, 발열 등이 주요 증상이며, 소량의 바이러스 입자만으로도 나이와 상관없이 감염을 일으킬 정도로 전염력이 강하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소아, 영아는 심각한 합병증을 겪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 7억명이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그 가운데 2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 노로바이러스는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의 5대 원인 중 하나로 떠올랐다. 노로바이러스는 확산하고 있지만, 이를 예방할 백신은 없다. 그동안 여러 제약사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업계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던 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개발한 미국 모더나, 일본 다케다가 벤처 투자사인 프레이저 헬스케어 파트너스와 공동으로 설립한 힐백스(HilleVax)였다.
그러나 모더나는 이번에 임상시험이 중단돼 재개 여부가 불투명해졌고, 힐백스도 앞서 지난해 7월 2800명의 영유아 대상 노로바이러스 백신의 임상시험에 실패하면서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 다만 성인을 대상으로 한 노로바이러스 백신은 계속 개발하고 있다.
노로바이러스 백신 개발이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바이러스에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바이러스 유전자형만 48개나 되고, 복잡한 진화과정을 거쳐 새로운 변이가 계속 출현하는 탓이다. 매년 GII.4, GII.3, GII.2 등 다양한 유전형이 검출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GII.17 유전형이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지에서 자주 검출되고 있다.
바이러스를 세포에서 배양하지 못하는 것도 바이러스 자체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백신 개발을 가로 막았다. 모더나가 노로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뛰어든 것도 코로나 19 대유행 당시 바이러스 대신 유전정보를 담은 mRNA로 백신을 개발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유전자 없이 껍질만 닮은 VLP가 대안
현재 노로바이러스는 계속 다양한 변종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가능한 한 많은 유전형을 추가한 다가 백신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최근 ‘바이러스 유사입자(VLP) 백신’이 주목받고 있다. VLP는 바이러스와 같은 모양으로 몸에 들어가면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실제 바이러스와 달리 유전체가 없어 기존 백신처럼 감염이나 병원성 우려가 적다. 말하자면 바이러스의 외형만 본떠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VLP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초저온(-70℃ 이하) 보관이 필요한 재조합 단백질이나 mRNA 백신과 달리 일반 냉장(2~8℃) 보관·유통도 가능하다. 이미 상용화된 VLP 기반의 백신도 있다. 미국 머크(MSD)의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인 ‘가다실’과 미국 크리에이티브 바이오랩스(Creative Biolabs)의 B형 간염 백신 등이다.
국내 기업들도 VLP 기반의 노로바이러스 백신을 개발 중이다. VLP 백신 개발 전문기업인 인테라는 보건복지부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현재 VLP 기반의 3가 노로바이러스 백신을 개발 중이다. 앞서 지난 2023년 12월 국내 최초로 노로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계획(IND)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했지만, 전례가 없는 만큼 식약처와 협력해 1년여간 IND 보완 작업을 했다.
회사는 최근 보완 서류를 제출했으며, 식약처 검토가 조만간 완료되면 오는 3분기에 1상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덕영 인테라 대표는 “자사 백신은 대장균(E.coli) 유래 물질로, 단백질 항원을 정제하고 세포 밖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어서, 최종 VLP의 순도가 높아 효능은 크고 부작용은 낮은 게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차백신연구소(261780)도 뛰어들었다. 4가지 노로바이러스 유전자형에 대응할 4가 VLP 백신을 만들 계획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만든 VLP 항원에 면역증강제 ‘엘-팜포(L-pampo™)’를 적용한 게 특징이다. 역시 올해 임상 1상 진입이 목표다.
차백신연구소 관계자는 “향후 제품 허가 시 대량 생산을 위해 세포주·바이러스주를 확보했고, 배양·정제 공정을 개발했다”며 “현재 노로바이러스 변이주에 대한 전임상 효능을 추가로 확인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임상 계획을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