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물의약품 전문회사인 조에티스(Zoetis)는 14일(현지 시각)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지난 1월 H5N1 감염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처음 나온 뒤 미국 내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공포가 커지자 정부가 가금류를 대상으로 직접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내놓은 방안이다./픽사베이

미국에서 철새와 닭·오리, 젖소를 중심으로 H5N1형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1년 넘게 확산하자, 조류에 직접 백신을 접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 H5N1 감염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처음 나오며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공포가 커지자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다.

미국 동물의약품 전문회사인 조에티스(Zoetis)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조건부 승인은 긴급 상황에 사용 가능한 의약품이 없을 경우, 안전성과 비슷한 효능이 입증된 의약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1년 안에 예방 효과를 증명하면 정식 승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조에티스는 미국 화이자의 동물보건사업부서에서 인적 분할해 독립한 동물의약품 분야 전 세계 1위 기업이다. 가축 백신, 항염증제, 진통제, 사료, 영양제 등 반려동물 의약품·의료기기 300개 이상의 제품군을 세계 100여 국가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 2020년에는 동물용 신종코로나19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하기도 했다.

회사는 앞서 2002년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H5N1형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 처음 백신을 개발했다. 이후 2022년 초 미국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가 확인되자 조에티스는 즉시 기존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의 업데이트에 돌입했다.

마헤시 쿠마르(Mahesh Kumar) 조에티스 글로벌 생물학제제 연구 개발 수석 부사장은 “이번에 미국 농무부가 조건부로 승인한 백신은 우리가 현재 업데이트하고 있는 백신”이라며 “H5N1 변이에 대한 효능이 앞서 HPAI 백신만큼 높을지 알려면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5N1은 특히 닭과 칠면조 같은 가금류에 치명적인 HPAI의 변이종이다.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 단백질이 각각 5형, 1형이어서 H5N1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HA는 바이러스가 사람 호흡기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해준다.

미국에서 가금류와 야생 조류에 퍼진 H5N1 바이러스가 사람까지 옮겨가면서 미국 내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66건의 H5N1 인체 감염 사례가 나왔다. 지난달에는 인체 감염자 가운데 처음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미 철새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진 H5N1이 코로나19에 이어 또다시 글로벌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미국 농무부 산하 동식물위생검사국은 지난 한 달 동안 146개 조류 군집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됐고, 2050만 마리 이상의 조류에 영향을 미쳤다고 파악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이 시작된 2022년 2월 이후 총 1억5000만 마리 이상이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계속 확산하자 살처분 일변도의 방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확산할 경우 닭·오리를 살처분했지만, 비인도적이고 방역 효율도 낮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살처분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살처분 대상을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농장 반경 3㎞에서 지난 2021년 반경 1㎞로 좁혔다. 이러한 조치에도 반발은 계속됐다. 감염 농장과 반경 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감염 개체들까지 모두 살처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도 차이가 난다. 살처분의 경우 장비, 인력 등 비용은 물론 보상비까지 마리당 1만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지만 백신은 200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살처분 대신 다른 대응법을 모색하고 있다. 케빈 헤셋(Kevin Hassett)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국장은 16일 CNN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닭을 살처분하지 않아도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퇴치 계획 발표할 것”이라며 “정부 최고의 과학자들과 생명과학 기술을 활용해 그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람 대상의 인간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화이자, 모더나, 노바백스, 큐어백 등이 개발에 나섰다. 특히 모더나는 지난해 7월 H5N1 백신 개발을 위해 미국 정부로부터 1억76000만달러(1조2400억원)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H5N1 백신 개발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바이오텍 백스다임, 연세대 의대, 한국백신 등이 지난 4일 신속개발 컨소시엄 협약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