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홈플러스의 ‘납품업체 정산’과 ‘소비자 상품권 사용’에서 피해가 발생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공정위는 1월에 납품된 상품의 대금 지급에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당 대금의 법정 정산 기한이 도래하는 4월초 전후를 집중 관찰 기간으로 삼고 있다. 나아가 공정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금정산기한 단축을 위한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19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 내 유통업체 조사 관련 부서, 소비자 관련 부서, 대규모유통업법을 손보는 정책 관련 부서가 모두 홈플러스 기업회생과 관련한 후속 영향을 살피고 있다.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점포의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점포의 모습. /뉴스1

◇ “법적 정산기한 도래 4월쯤부터 피해 사례 있는지 주시”

우선 공정위는 납품업체의 정산에 차질이 빚어지는지를 모니터링 중이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직매입은 ‘상품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 특약매입(위수탁거래·임대거래)은 ‘월 마감일로부터 40일 이내’에 정산이 이뤄져야 한다. 해당 기한을 넘기면 연체 분에 대해 공정위가 정한 이율에 따른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법정 정산 기한을 넘긴 것과 연체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행위 모두 공정위의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대상이 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12월 정산 대금은 모두 정상 지급됐고, 1월 대금은 일부 아직 정산되지 않았다. 홈플러스에서 1월 발생한 상거래 채무는 총 3791억원인데, 그 중 약 87%(3322억원)가 지급됐고 나머지 469억원가량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1월 말엔 설 연휴가 포함돼, 돌려받아야 할 납품 대금 규모 자체가 크다는 것이 납품업체나 입점업체들의 불안 요소다.

공정위는 이날 기준 법적 정산기한을 넘겨 대금이 미지급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1월 중후반 납품된 물품 거래일로부터 60일이 초과되는 3월 말~4월초쯤을 주시하고 있다. 홈플러스 거래 대상에는 직매입과 특약매입 형태가 혼재돼 있는데, 상당 부분이 직매입 형태로 거래되는 상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1월 19일 납품이 이뤄졌는데 3월 20일(60일 후)까지 대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금 지급이 60일을 초과해 이뤄졌다는 피해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며 “4월초 전후부터 기일 내 상품판매대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진 않을지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홈플러스 사업장에 대한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다만 정식 ‘조사’ 카드는 아직 발동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납품 관련 피해 당사자의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탓에 현장조사엔 나설 요건이 안 되고, 공정위가 필요 시 자체적으로 불공정 행위 의심 사업장에 나갈 수 있는 직권조사도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현재로선 성급하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홈플러스 매장 일부 매대가 비어 있다. /뉴스1

◇ “상품권 사용 관련 소비자 피해도 모니터링… 아직 이상無”

공정위는 또 홈플러스 상품권과 관련한 소비자 피해도 한국소비자원과 함께 모니터링하고 있다. 일부 제휴사에서 홈플러스 상품권을 거절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상품권의 대부분(96%)이 쓰이는 매장에선 정상적으로 수취되거나 또 환불이 가능하기 때문에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처럼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공정위 관계자의 시각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홈플러스가 판매한 상품권 중 회생절차 개시 이후 약 10억원의 소비자 환불 요청이 있었고 전액 환불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밖에도 ▲'1+1 기획상품’ 등 중소 납품사 상대 갑질 의혹 ▲신상품 입점장려금(납품업체의 신상품에 대해 유통업자가 매장에 진열해주는 대가로 받는 판매장려금의 일종) 위법성 등에 대해서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홈플러스·MBK 파트너스 및 삼부토건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 “130여개 유통 브랜드 실태조사, 정산기한 단축 작업 속도”

한편 공정위는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기존에 진행 중이던 대규모유통업법상 대금지급기한 단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부터 홈플러스를 포함한 130여개 유통 브랜드의 정산 기한·방식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 규정(40·60일 법적 정산기한)이 사용된 지 너무 오래된 데다 너무 길다는 지적이 있어서 개선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면서 “업체들이 정산하는 기본적 구조들이 있을 거라 업계 거래 현실에 맞게 제도 개선을 하려고 자료를 제출받고 있다”고 했다.

과거 국회에서 정산 주기 단축 요구와 개선 움직임이 있었던 적은 있지만, 공정위가 나서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부에선 이번 홈플러스 경영 악화 및 기업회생절차로 인해 촉발된 유통업계의 불안감으로 해당 작업이 더욱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현재 홈플러스는의 평균 정산 기간은 50일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법정 기한보단 열흘가량 짧아 문제는 없지만, 이마트·롯데마트 등 다른 대규모 유통사의 평균 정산 기간(20~30일)보다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