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자취방을 마련하고 집꾸미기에 한창인 직장인 홍모(31)씨의 요즘 고민은 살풍경한 흰색 ‘벽지’다. 마음 같아선 뜯어내고 취향인 벽지를 새로 붙이고 싶지만, 월세방에 그럴 수는 없는 일.

홍씨는 “방을 어떻게 꾸며도 결국 벽지 때문에 ‘남의 집’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더라”라면서 “차선책으로 그림 액자나 벽걸이 인테리어 소품, 화분 등 내 취향의 것들로 아예 벽을 가려버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홈·테이블데코페어 전시. /연합뉴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월세로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에 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벽지 시공을 대신할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 등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는 높아지는데, ‘퇴거시 원상복구’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대체재를 찾아나선 것이다.

1인 가구, 그 중에서도 임차로 거주하고 있는 1인 가구는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 2020년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총 2092만7000가구 가운데 1인 가구는 664만3000가구로 31.7%를 차지했다. 직전 조사인 2015년과 비교해 27.5% 늘어난 수치이며, 특히 29세 이하 청년층 1인 가구가 52.9% 증가했다.

또 1인 가구의 거주 형태를 살펴보면, 41.2%(273만5000가구)는 월세로 거주했고, 이외 자가(34.3%), 전세(17.5%) 순이었다. 월세에 거주하는 1인 가구 비중은 지난 2015년과 비교해 24.6%(53만9000가구) 늘었다.

이렇게 전·월세, 특히 월세로 사는 집은 MZ세대의 취향대로 꾸미기가 쉽지 않다. 가구나 수납장, 조명 등은 그나마 배치가 수월한 편이지만, 생활 공간의 전반적인 인상을 결정하는 벽지는 바꿀 수가 없어서다.

침실을 '홈 갤러리'로 꾸민 예시. /픽사베이

주어진 한계 안에서 맞춤형 공간으로 디자인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은 아예 벽을 가리는 방식으로 인테리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늘의집 운영사 버킷플레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오늘의집 스토어에서 홈갤러리(가정용 그림)와 월데코(벽면 장식) 거래액은 각각 전년 대비 36.8%와 13.7% 증가했다.

데스크 및 디자인 문구(책상 인테리어 및 벽걸이 달력 등) 거래액은 같은 기간 17.4% 늘었다. 모두 벽에 거는 용도의 장식품인 이 3개 카테고리를 합치면 거래액 증가 비율이 전년 대비 29.3%에 달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각자의 인테리어 사례를 올리는 ‘집들이’ 관련 게시물에서도 ‘벽 가리기’ 경향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20평 이상의 집들이 콘텐츠는 아예 전체적인 리모델링 시공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1~9평 집들이 콘텐츠는 주어진 공간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꾸미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1~9평 콘텐츠에는 인테리어의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벽에 월데코나 홈갤러리 등 소품을 부착하거나 여행 사진들로 벽을 장식하는 등의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 오늘의집 관계자는 “자기 소유의 집이 아닌 전·월세더라도 생활 공간을 개인화하려는 욕구는 분명히 있는데, 인테리어 소품이 늘어나면서 이런 욕구가 소비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에서 비대면화가 진행되면서 집이라는 공간이 수행하는 역할이 휴식 뿐만 아니라 업무, 여가 등으로 넓어졌다”면서 “이에 집을 취향에 맞게 꾸미고자 하는 수요도 느는 만큼 이를 뒷받침하는 홈 스테이징(Home Staging·실내 공간을 재단장하는 것) 산업도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