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시민들이 조선시대 골목길과 108개동 건물지 일부 등 유구와 1000여점이 넘는 생활유물들을 관람하고 있다. 서울의 600년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이 위치한 곳은 다름 아닌 고층 건물이 빽빽히 들어선 도심 한복판, 지상 26층 고층 건물의 지하 1층이다.

도심 개발이냐 문화재 보존이냐를 놓고 늘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재가 발견된 공사현장에 문화재 원형 보존을 약속 받는 대신, 개발사업 시행사 측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개발과 보존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대표적이다.

서울 종로구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내부. 지난 2015년 공평1·2·4 지구 도시환경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이 전시돼 있다. / 김송이 기자

◇”당근 없이 문화재 보존 만을 강요할 수 없어”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공평1·2·4 지구 도시환경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 한양부터 근대 경성의 서울 골목길과 건물터가 여럿 발견됐다. 특히 거대한 대청마루가 있는 독특한 구조의 ㅁ자, ㄴ자형 건물터는 육의전 등이 있던 종로 옛 상가와 연관된 시설로, 조선 후기 도시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공평동에서 발굴된 유물 규모를 감안하면, 문화재 원형을 보존하는 게 원칙이다.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하지 말고 지하를 문화재가 발굴된 형태 그대로 덮어야 한다는 의미다. 고층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지하를 파지 말라는 것은 지하 주차장을 만들지 말라는 말과도 같다. 사실상 개발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문화재 보존과 도심 개발 사이에서 고민하던 서울시는 ‘공평동 룰’이라는 방안을 시행사 측에 제안했다. 발굴된 역사 자원을 건물 지하에 전면 보존하는 조건으로 인허가를 내준 것이다. 일부 지하 공간 활용이 불가능해진 시행사 측에 보상으로 용적률 200%를 더 부여해 건물이 기존 계획인 22층보다 4층이나 더 높아졌다. 역사자원 보존을 조건으로 서울시가 용적률 인센티브를 처음 허락한 사례다.

지난 7월 조선시대 금속활자 1600점이 발견된 공평15·16지구에도 ‘공평동 룰’이 적용된다. 서울시는 발굴 유적에 대한 전면 보존이 필요하다는 문화재청 판단에 따라 처음 결정된 정비계획을 변경했다. 정비계획 변경안에 따르면 시행사는 매장문화재를 전면 보존해 유적 전시관을 조성해 기부채납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 건물 높이를 기존 지하8층~지상17층(용적률 803%)에서 지하8층~지상25층(용적률1052%)로 높일 수 있다.

지난 2015년 공평1·2·4 지구 공사현장에서 유물이 대거 발굴되자, 서울시는 건물 지하에 발굴된 역사자원을 전면 보존하는 조건으로 용적률을 200% 추가 부여해 인허가를 내줬다. 사진은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전시된 서울 종로구 한 고층건물. / 김송이 기자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올 연말 내에 착공에 나서 2025년 준공할 예정이다. 2025년 준공 후에는 4745㎡ 규모의 유적 전시관이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이 전시관은 육의전 박물관(505㎡)의 9.4배,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공평동 제1·2·4지구, 3818㎡)의 1.25배로 국내 최대 규모 유적 전시관이 될 예정이다.

◇늘어나는 문화재 보존과 도시 개발의 공존

공평동 룰처럼 시행사에 인센티브를 주지 않고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과 문화재를 보존하면서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오는 2022년 개장 예정인 레고랜드에는 놀이 시설만 들어서는 게 아니다. 장난감 레고를 테마로 하는 테마파크 이름에 맞지 않게, 선사시대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시설들도 들어선다.

레고랜드 테마파크가 조성되는 강원 춘천시 중도 문화재보존구역에는 유적 공원과 유물 박물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해당 부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부터 원삼국 시대(기원전 1세기 경)까지 다양한 시기의 유적이 전시된다. 레고랜드 공사 소식이 알려지자 유적지 위에 테마파크를 조성하면 안 된다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이어졌고, 테마파크 조성과 유적지 보존을 동시에 해내기 위한 방안을 찾은 셈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유적 공원과 박물관은 레고랜드 조성 사업의 허가 조건”이라면서 “다음달 중으로 유적공원 착공이 시작된 후 순차적으로 박물관 건설도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레고랜드 관할지인 춘천시가 두 시설 조성 사업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해 잠시 어려움이 있었지만, 춘천시나 강원도청 중 한 곳이 유적공원과 박물관을 담당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정리됐다”고 했다.

등록문화재 제700호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 내부 / 전라남도

지난 2017년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전남 목포시 조선내화주식회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날 예정이다. 목포시 서산·온금지구 재정비 사업이 진행되던 중 지구 내에 있는 조선내화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갈등이 빚어졌는데, 목포시가 사업 진행과 갈등 해소를 위해 상생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문화재청도 조선내화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에 승인을 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보존과 지역 개발을 동시에 이루기 위해선 인센티브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발 과정에서 발굴된 유물은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보존하는 게 맞지만, 문화재 발굴과 보존에 대한 책임은 시행사 측에만 떠넘기고 있다”면서 “시행사가 문화재법을 어기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 공사를 진행하다가 문화재가 발굴된 경우 정부도 공사 지연과 계획 변경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가 살아왔던 도시의 삶에 대한 흔적을 모두 지워내고 새로운 도시 건설만을 내세우는 것은 난센스”라면서 “문화재 원형을 잘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위한 비용은 모두가 분담해야 한다”며 “건폐율, 용적률, 높이제한 등 건축물에 대한 완화 규정을 적용하거나 보존 시설 관람비를 책정하는 식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문화재 보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