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내달 18일 임기가 만료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31일 밝혔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 등 권한을 소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던 그간 여당의 기조와 사뭇 달라진 것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재의요구권 행사 요청 등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헌법재판관) 8명이 (내달) 18일 임기만료로 퇴임하면 (재판관이) 6명밖에 남지 않는다”며 “(2명이 퇴임하면) 6명으로는 헌법재판소 운영을 못한다. 그래서 대행이 2명을 임명하는 게 헌재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 탄핵소추 통과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논란이 일자, 대통령 권한대행은 ‘소극적 권한행사’만 할 수 있다며, 대통령 ‘직무 정지’ 시에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대통령이 ‘직무 정지’인 상황에선 독립적 헌법 기구인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 밖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약 3개월 만에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한 대행 탄핵심판을 7 대 1로 기각 또는 각하면서 헌법재판관 미임명이 헌법상 구체적 작위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헌재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2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에 대해 임명된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사실상 인정해 권한대행의 임명 권한 논란이 종식됐다고 봤다.

‘몇 달 전에는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라는 지적에 대해 권 원내대표는 “최 대행이 이미 2명을 임명해 헌재가 운영돼 가동됐고,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컨센서스(일치된 의견)가 이뤄졌다고 보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과거에는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논란이 있었는데 이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몫 3명 중 2명을 임명해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야당이 주장하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과 관련해선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는 “마은혁 후보자는 여야 합의 없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마 후보자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 수호 의지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헌법 재판관에 임명하는 것은 헌정 체제 수호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권 원내대표는 추후 정부와 관련 사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 대행이나 총리실과는 4월 18일 임기만료되는 후임 재판관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며 “당이 정부에 (후임 재판관 임명을) 요구할 것이냐 말 것이냐 문제는 탄핵 심판과 관련한 민주당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선 ‘국무위원 줄탄핵’ 등 마 후보자 임명에 대한 민주당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여권이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 임명’을 맞불 전략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 주장을 받아들여 마 후보자 임명을 수용하되, 퇴임 예정인 두 헌법재판관 후임자를 조속히 임명하면 내달 18일 이후 헌재에서 보수 우위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헌법재판관 8인은 중도·진보 성향이 5명, 중도·보수 성향이 3명으로 분류돼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와 퇴임 헌법재판관 후임자 2명(대통령 지명 몫)을 임명하면 헌재는 진보 성향 재판관 4명에, 보수 성향 재판관은 5명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