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여야는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 산불 피해 지원과 복구 예산도 추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재난 예비비 복원’ 여부를 두고 부딪히면서 추경 편성 합의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오른쪽에서 순서대로 김상훈 정책위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이만희 산불재난대응특위 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불 피해지역 신속 복구 및 지원 방안 마련을 위한 산불재난대응 특별위원회 긴급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그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등 정치 현안에 뒷전으로 밀렸던 추경 논의가 27일 산불 피해 복구 예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여야간에 이뤄지면서 다시 불붙었다. 그러나 추경 규모와 세부 내용을 두고 여야 간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올해 예산안에서 삭감된 ‘재난 예비비 복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고소득자, 저소득자 가리지 않고 돈을 뿌리자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엔 목을 메면서,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재난 예비비 추경 편성에는 예비비가 부족하지 않다며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감액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 민주당을 정조준한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예비비는 총 2조4000억원이다. 목적예비비 1조6000억원, 일반예비비는 8000억원 등이다. 민주당은 작년 말, 올해 예산을 단독 처리하며 총 예비비 중 절반을 삭감했다.

국민의힘은 목적예비비 1조6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은 고교무상교육과 5세 무상고육에 우선 배정돼 있어, 정작 재난 대응에 쓸 수 있는 예비비는 3000억원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2022년 3월 경북 강원 지역 대형 산불 당시 4170억원의 복구비가 집행됐는데, 최근 발생한 ‘산불 사태’는 인적·물적 피해가 훨씬 커 예비비 복원은 물론 증액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날 첫 회의를 연 당 ‘산불재난대응특별위원회’도 추경안에 재난 예비비를 대폭 확대 편성하는 안을 검토키로 했다. 이만희 특위 위원장은 “재난 대응에 많은 예비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이 이뤄지게 된다면 야당과 협조해 예비비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르면 오는 28일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추경 규모와 세부 항목 등 추경 편성을 논의할 계획이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오른쪽)이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민주당 천막당사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재난 대응 예산을 추경에 편성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재난 예비비를 복원할 필요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힘이 산불을 빌미로 (삭감된) 예비비 2조원을 복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의 밤에 경제부총리에게 지시했던 것처럼, 내란 예산·비상입법기구 예산이라도 확보해주려는 거냐”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본예산에 편성된 행정안전부 재난대책비 3600억원, 산림청 산림재해대책비 1000억원, 목적예비비 1조6000억원에 더해 재해대책 국고채무부담액 1조5000억을 활용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지난 2월 발표한 자체 추경안에 국민안전예산으로 9000억원도 편성한 만큼, 추경 논의에 곧바로 착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산불 피해를 계기로 ▲인명구조 로봇 등 최첨단 소방 장비 도입 ▲스마트 산림 재난 통합관리체계 구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재난대응대책을 위한 예산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재난 예비비를 둘러싸고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추경을 깊이 있게 논의할 여야정 국정협의회 재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앞서 야당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며 국정협의회 논의에서 최 대행을 배제했다. 이후 기재부 차관급이 참여하는 실무협의로 대체했지만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정부는 국정협의회 합의가 없으면 추경안 편성을 신속히 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이날 “(정부는) 예산 편성 수립의 최종 총괄 책임자를 탄핵 추진하면서 추경을 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는 입장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조만간 물밑 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등 정치권을 뒤흔들 대형 이슈를 앞뒀다는 점에서, 정부 추경안이 제출되더라도 국회 심의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