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주요 국정 현안을 진척시키기 위해 여야 협조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지만, 여야정이 참여하는 국정협의회가 다시 열릴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 임명 여부를 두고 대립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특별법·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민생 현안이 계속해서 표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25일 국회에 따르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마은혁 후보 임명 전까지 여야정협의회를 운영하지 않을 방침인가’라는 질문에 “(한 권한대행이)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엉뚱한 얘기만 하면 공동체가 굴러가겠냐”고 답했다. 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이 마은혁 후보를 먼저 임명해야 여야정협의회를 추진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조 대변인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당에서 아직 여야정협의회 관련 논의를 특별히 시작하진 않았다”면서도 “그보다 먼저 한 권한대행이 (마은혁 후보 임명 관련)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연금개혁 논의는 끝났고 반도체특별법은 정부가 고시 제·개정으로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하기로) 했다”며 “추경만 남았는데, 추경도 정부가 편성해서 제출하면 되는 문제”라며 협의회를 당장 열 필요성이 크지는 않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당의 요구 조건인 마은혁 후보에 대한 임명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2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기각 판결에 따라 87일 만에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업무에 복귀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출근길에서 마은혁 후보 임명 관련 입장을 묻자 “또 뵙겠습니다”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초당적 협력이 당연한 주요 국정 현안들을 안정감 있게, 동시에 속도감 있게 진척시킬 수 있게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여야의 초당적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말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맡던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제외한 채 국정협의회를 진행해 왔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7일 ‘마은혁 후보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음에도, 최 부총리가 임명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 결과 반도체특별법과 추경 등 현안에 대한 논의가 공전하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 여부를 특별법에 포함할지를 두고 여야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근로 예외 조항을 빼고 먼저 처리한 뒤 추후에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추경은 여야 모두 조기 편성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지만 규모와 내용 등을 두고 의견 차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상대로 한 선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은 전 국민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 보편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도 상속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합의안 도출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현행 유산세 방식의 상속세 체계를 상속인들이 각자 받은 재산만큼만 과세하는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부자감세’ 논란으로 야당과의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야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는 합의했지만 일괄공제와 자녀공제 등 세액공제 한도를 놓고 의견 차를 보이고 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여야정협의회와 관련, 민주당이 ‘최 부총리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막 복귀한 한 권한대행에 대해서는 아직 방침을 정하지 않은 듯하다”며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추경 등 여러 가지 논의는 여야정협의회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가 빠진 채 ‘여야’ 협의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 24일 한 권한대행의 말씀은 다시 ‘여야정’이 참여하는 협의회로 정상화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취지이며, 여야도 협조해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