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관련 중소·중견기업이 입지나 설비에 신규 투자하면 투자금액의 최대 50%를 투자보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반도체 기업이 투자 재원을 조달할 수 있게 50조원 규모의 첨단 전략산업기금 중 2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 분야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보증 지원도 확대한다.
정부는 15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 선점을 위한 재정투자 강화 방안’을 확정했다.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는 메모리 분야에선 글로벌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분야는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신 정부가 출범한 후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산업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기업 지원을 위한 ‘반도체특별법’은 국회에 장기 계류하면서 반도체 시장 선점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반도체 산업 인프라 구축과 투자 지원 확대, 차세대 반도체 개발, 우수 인재 확보 등 4대 패키지 지원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 반도체 中企 전용 투자보조금 신설… 저리대출 재원도 3조 증액
정부는 이날 발표한 반도체 지원안에서 투자보조금을 신설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보조금을 언급하며 정부에 적극적인 재정 투자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열악한 재정 상황과 WTO 보조금 협정 위반 가능성을 언급하며 보조금 정책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산업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한다고 판단하고 투자보조금을 신설했다. 다만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은 제외하고 중소·중견기업으로 보조금 지원 대상을 한정했다. 분야도 첨단 소·부·장으로 한정했다.
이에 대해 강윤진 기재부 경제예산심의관은 “업계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기업은 빠른 인프라 조성을 희망했다. 또 대기업에 대해선 투자세액공제로 혜택(favor)을 주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부·장과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에 초점을 맞추고 중소·중견기업을 겨냥한 보조금 제도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신설된 투자보조금은 입지와 기업 규모에 따라 지원 금액이 달라진다. 중소기업이 비수도권에 투자를 하면 투자금의 50%를, 수도권에 투자를 하면 투자금의 40%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중견기업은 비수도권 투자는 40%, 수도권 투자는 30%를 보조금으로 되돌려준다. 정부는 올해 1월 1일 이후 투자한 건에 대해선 모두 보조금 지원 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다. 다만 보조금 지원 한도는 건당 최대 150억원, 기업당 최대 200억원으로 제한한다.
정부는 또 기존 반도체 저리대출 재원 17조원에 추가로 3조원을 확대해 총 20조원 규모의 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금 출연 등 산업은행이 적극적으로 정책 금융을 수행할 수 있도록 2000억원 규모의 신규 출자도 검토한다.
반도체 분야 기술보증 한도도 기존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2배 확도하고, 일반반도체 분야에 대한 기술보증비율(현행 85%)도 차세대반도체 수준(95%)으로 상향한다.
올해 1월 1일 이후 이뤄진 기업의 반도체 분야 투자에 대해선 국가전략기술 대비 세액공제율을 5% 상향 적용하는 지원책도 계속 추진한다.
올해 1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비수도권에 단행한 중소기업이 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면, 3년에 걸쳐 65억원을 지원받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우선 투자금 100억원의 50%인 50억원을 투자보조금으로 돌려 받는다. 보조금을 제외한 투자금 50억원에 대해선 30%인 15억원을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다만 최저한세율 7% 규정으로 2025년 귀속분을 납부하는 2026년에는 13억원이 세액공제되고, 이듬해인 2027년에 잔여 공제액 2억원이 이월된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 용인·평택 클러스터 송전 지중화 사업에 국비 1.3조 지원
정부는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 인프라 지중화 비용의 70%를 국비로 지원하기로 했다. 용인·평택 송전 인프라 구축에는 총 4조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해당 비용은 수요자 부담이 원칙으로,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에 입주하려는 기업의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용인·평택은 인구밀집지역으로 신속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송전선로 지중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중화에 들어가는 비용은 저체 송전 인프라 구축 비용의 60%인 2조4000억원이 소요된다. 지금까지 한국전력이 4000억원, 입주 예정 기업이 2000억원을 투입해 지중화 작업을 마칠 때까지 약 1조8000억원가량의 재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대규모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이하 첨특단지)가 적시에 조성될 수 있도록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1조8000억원)의 70%인 1조2600억원을 국비로 지원하기로 했다. 해당 비용의 5% 규모인 626억원을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도 반영할 예정이다.
첨특단지 인프라 지원 한도도 2배로 상향한다. 현재 첨특단지 인프라 지원 비용은 단지별 500억원으로 한도가 책정돼 있다. 입주할 기업 규모에 비해 지원 한도가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인 일반산단의 경우 자체 폐수처리시설에만 3조9000억원이 소요되고, 평택 일반산단은 자체 변전소 설치에만 2200억원이 소요되는 등 기업의 부담 규모가 상당하다.
이에 정부는 투자규모가 100조원 이상되는 대규모 클러스터에 대해선 전력·용수 등 인프라 국비지원 한도를 현행 500억원에서 1000억원까지로 상향할 방침이다. 현재 첨특단지 기반시설 구축비용의 15~30%를 지원하던 것도 최대 50%까지 지원 비율을 확대한다.
정부는 이처럼 첨특단지 인프라 지원 확대를 위해 올해 예산에 252억원만 책정된 ‘첨특단지 기반시설 지원구축 사업 비용’도 추경을 통해 1170억원 늘리기로 했다.
◇ ‘미니팹’ 조성해 반도체 설계 경쟁력 확보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AI 반도체 실증장비 확대도 추진한다. 설계 오류 검증 장비(대당 약 70억원)와 시제품 실증 장비(대당 약 12억원) 등 AI 반도체 실증장비를 공공 인프라 내 구축해 중소 규모 팹리스들이 공동으로 쓸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실제 양산 환경과 유사한 ‘미니팹’ 구축도 추진한다.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혁신 역량을 보유한 ‘스타 팹리스’ 지원도 확대한다. 정부는 지난해 스타 팹리스 20개사를 선정하고 이 중 15개사에 대해 반도체 설계 R&D를 지원 중이다. 정부는 스타팹리스 5개사에 대해서도 지원을 할 방침이다.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확대한다. 우선 국내 신진 석박사들이 외국에 나가 R&D 연수를 할 수 있는 ‘아웃바운드’ 프로그램과, 해외 고급 인재가 국내에 들어와 전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인바운드’ 프로그램을 신설해 운용키로 했다.
지방에서도 반도체 우수 인재를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현재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아카데미의 지방 건립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