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으로 확대된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경제 심리를 위축시켜 경기 하방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지적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발표 이후, 가계와 기업의 심리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KDI는 8일 발간한 ‘경제동향’ 2025년 1월호에서 “건설업을 중심으로 생산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경기개선이 지연되는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경제 심리가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7일 서울 중구 명동 중심의 상점이 영업을 중단한 모습. /연합뉴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은 소비자 심리 지수를 급냉시키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KDI에 따르면 12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전월(100.7)에 비해 대폭 하락한 88.4를 기록했다. 특히 현재 경기 판단이 70에서 52로, 향후 경기 전망이 74에서 56으로 크게 낮아졌다.

KDI는 “과거 정국 불안 시기(2016년 10월)와 비교해 보면, 원·달러 환율이나 CDS 프리미엄의 상승폭은 제한적이었으나, 가계와 기업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2016년 당시 3개월에 걸쳐 9.4포인트(p) 하락했지만, 이번에는 12월 3일 이후 한 달 만에 12.3p나 하락했다.

심리뿐만 아니라 실제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는지 여부는 이달말 발표되는 2024년 12월 산업활동동향에서 확인이 될 전망이다.

11월 전산업 생산은 0.3% 감소를 기록했다. 건설업 생산(-12.9%)은 전월(-10.8%)보다 감소폭이 확대됐다. 반도체의 높은 생산 증가세(11.1%)에도 자동차(-6.7%), 전자부품(-10.2%)에서 생산이 감소하며 광공업 생산이 0.1% 증가에 그쳤다.

재고율은 전월(112.3%)에 이어 높은 수준(111.8%)을 기록했다. 평균 가동률도 72.3%에서 71.8%로 하락했다. KDI는 “제조업에서 생산 둔화를 시사하는 지표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수는 상품소비·건설투자 부문 부진이 장기화하며 회복이 지연되는 모습이다.

11월 소매판매는 감소폭(-0.9%→-1.9%)이 확대됐다. 승용차(-7.9%), 가전제품(-4.5%), 통신기기 및 컴퓨터(-6.2%), 화장품(-9.8%) 등 주요 품목에서 감소세를 보이며 감소폭이 확대됐다. 서비스 소비도 숙박 음식업점(0.1%), 예술⋅스포츠⋅여가관련서비스업(0.3%)과 같은 주요 업종을 중심으로 미약한 증가세를 보였다. 교육서비스업(-0.5%)은 감소세를 보였다.

설비투자는 반도체 관련 투자가 개선되며 완만한 회복세(2.6%)를 지속했지만, 건설투자는 건설기성의 감소폭이 확대(-10.8%→-12.9%)되면서 부진한 흐름을 지속했다.

설비투자에서는 기계류(9.7%), 반도체 제조용 장비(63.3%)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건설투자는 선행지표인 건설수주(경상, 62.9%)가 기저효과와 공공부문의 주택공급 확대로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건설수주의 개선은 상당한 시차를 두고 건설투자에 반영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KDI는 전망했다.

노동시장은 완만한 둔화 흐름을 이어갔다. 11월 취업자 수는 전년대비 12만3000명 증가하며, 전월(8만3000명)에 이어 낮은 증가폭을 기록했다. 건설업(-9.6만명)과 제조업(-9.5만명)에서 감소폭이 크게 확대됐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직전달(1.5%)보다 높은 1.9%로 집계됐으나, 2% 아래를 기록했다. 변동성이 높은 석유류를 중심으로 소비자물가 상승폭이 확대됐으나, 내수 부진으로 기조적 물가 상승세 둔화 흐름이 지속됐다. KDI는 “소비심리 위축이 추가적인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