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마무리된 새해 첫 ‘중앙은행 슈퍼위크’에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금리를 동결하면서 기존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금리를 3연속 유지했고, 중국 인민은행도 시장의 예상을 깨고 대출우대금리(LPR)을 동결했다. 일본은행도 금리를 종전 수준으로 묶었다.

한국은 최근 부진한 중국 경제에 동조화되면서 인민은행의 금리 동결 소식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가는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도 오르면서 1330원대를 넘어섰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올해 첫 회의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 유럽·일본, 금리 동결… 일본은 마이너스금리 유지

ECB는 지난 25일(현지시각) 통화정책이사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4.50%, 수신금리와 한계대출금리는 각각 연 4.00%, 연 4.75%로 동결했다. ECB는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난 2022년 7월부터 작년 9월까지 기준금리를 연 0%에서 4.5%로 끌어올린 후, 작년 10월부터 3회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25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직후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CB는 2% 물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현행 기준금리를 충분히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유로존 물가 상승률은 작년 10월(2.9%)부터 3개월 연속 2%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홍해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물가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중국 인민은행도 금리 인하를 예상했던 시장의 기대를 깨고 긴축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인민은행은 지난 22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LPR을 1년 만기 연 3.45%, 5년 만기 연 4.20%로 동결했다. 인민은행은 일주일 전인 지난 15일 1년 만기 정책금리인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동결한 바 있다.

중국이 금리 인하에 신중한 이유는 5%대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금리 격차가 확대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면 해외 자금이 중국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중국 증시는 금리 인하가 지연되자 상하이지수·선전성분지수·CSI300지수 등 3대 지수가 일제히 2% 이상 폭락해 4~5년만에 최저점을 찍기도 했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정책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금리를 동결했다. 지난 23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로 유도하는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유지했다. 일본은행은 지난 2016년 1월 마이너스 금리를, 9월 YCC를 도입한 후 8년째 완화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유럽은 최근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플레이션이 꽤 잡혀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정책입안자들이 매파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고, 중국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지만 위안화 가치 절하를 막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일본은 춘투(春鬪·봄철 임금 협상)가 마무리되는 3월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 韓 증시·환율, 中 따라 약세… 美 FOMC 결과 주목

한국의 외환·주식시장은 중국 인민은행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은 모습이다. 금리 동결 후 힘이 빠진 위안화와 중국 증시에 동조화되면서 원화와 주가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평균 1336.40원을 기록하면서 일주일 전(1329.60원)보다 5.8원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도 2500선을 밑돌면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일본과 유럽은 증시가 급등했고, 환율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지난 22일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3만6546.95(종가기준)까지 치솟으면서 33년 11개월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지난 26일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50 지수(4635.47)는 2001년 2월 이후 처음으로 4600선을 넘겼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지난 17일부터 26일까지 148엔 안팎을, 같은 기간 유로 환율은 1.09유로를 유지했다.

지난 24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중국 경기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액은 전체 수출 총액의 19.7%에 달한다. 미국(18.3%)과 유럽(10.8%), 일본(4.6%)을 웃도는 수준이다. 중국 경기 부진은 원화 가치와 한국 증시를 동시에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유럽과 일본 경기 회복은 상대적으로 국내 경기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31일(현지시각) 공개되는 미국 FOMC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다. FOMC가 기준금리를 현행 5.25~5.50%로 동결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조기 금리 인하 여부를 두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관심사다. 연준의 결정에 따라 국내 증시와 환율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연준의 입장이 명확해지면 한국은행도 이에 맞춰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난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대에 그치고 수출도 기저효과를 넘어서는 회복세가 보이지 않고 있어, 2분기 말에는 한은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