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구제역, 소 럼피스킨병이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으로 번지면서 농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닭고기, 계란값이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유행병이 번질 경우 장바구니 물가 타격을 막기엔 역부족일 가능성이 있다.

20일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닭 육계 1㎏의 소비자가격은 5720원으로 전년(5447원)보다 5% 상승했다. 평년(5135원)보다는 11.3% 올랐다. 사룟값이 오르는 생산비 증가 요인에다 AI 확진까지 겹치면서 수급이 불안해지자 가격도 덩달아 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0월 15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달걀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달걀 가격은 아직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17일 기준 달걀은 특란 30개 소비자가격이 6110원으로 1주 전인 지난 10일의 6283원과 유사한 수준이다. 전년(6716원)보다는 9% 내렸지만, 평년(5785원)보다는 5.6% 오른 상태다.

하지만 최근 산란계 농장을 중심으로 AI가 확산하면서 계란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병원성 AI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17일 기준 전국 가금농장의 고병원성 AI 확진 사례는 모두 20건이다. 이 중 산란계 농장 11곳에서 AI가 발생했다. 이외 6곳은 육용 오리 농장, 육용종계 농장과 종오리 농장이 각각 2곳, 1곳이다.

피해 가금농장에서 검출되는 바이러스 유형이 ‘H5N1′, ‘H5N6′ 두 개인 점도 방역 당국의 시름을 깊어지게 하고 있다. 역대 최악으로 꼽히는 2016∼2017년 AI 확산 때도 H5N6형과 H5N8형이 동시 유행한 바 있다.

2016~2017년 AI가 전국으로 확산하며 산란계 36%가 살처분돼 일부 지역에서는 계란 한 판 가격이 1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당시 일부 제과 업체는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 카스텔라 등을 생산하지 않기도 했다.

전염병이 퍼지면 살처분으로 인해 가격이 오르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럼피스킨병이 확산하며 소고기 가격이 급등세를 보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0월 24일 한우 고기 도매가격은 킬로그램(㎏)당 2만53원으로, 럼피스킨병 발생 전인 19일 1만7723원과 비교해 13.1% 오른 바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다양한 전염병이 연달아 발생한 이유로 코로나19 완화 조치 이후 이동량이 많아진 것을 꼽는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대 교수는 “코로나 기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각종 전염병 발생이 잠잠했지만, 여행객이 늘고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전염병이 늘고 있다”면서 “개별 농가에서 방역을 단단히 하지 않으면 산발적으로 전염병이 계속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AI로 인한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신선란과 닭고기를 수입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는 지난 15일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향후 AI 확산 속도 등에 따라 신선란 112만개(약 67톤)를 내년 1월부터 국내에 도입하기로 했다. 닭고기도 내년 1분기 이내에 추가 할당관세 물량 3만톤을 도입할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AI 확산에 대비해 닭고기 공급 확대 차원에서 종계 사육 기간 제한(64주령)을 없앴다. 할당관세 조기 시행과 부화 목적으로 쓰이는 종란 수입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14일까지 살처분한 종계는 8만9000마리로, 전체 사육 규모 대비 미미한 수준”이라며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정부 노력에도 AI 확산이 이어질 경우 장바구니 물가 타격을 막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수입품을 들여오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살처분 규모가 늘면 물가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계란이 들어가는 빵이나 과잣값이 오르고 외식 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