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저온으로 과일과 채소 가격이 급등하면서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졌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로 불거진 국제유가 불확실성은 향후 물가 전망을 어둡게 한다. 정부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대 진입은 커녕,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때 제시했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3.3%) 달성도 어려워졌다는 예상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하고 민생 안정을 위해 물가 관리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긴 어려운 상황이다. 식품·유통·외식프랜차이즈업계 등에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며 가공식품 및 외식서비스 물가는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공급-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농산물의 가격 변동은 비축 물량 시장 공급을 제외하곤 마땅한 수단이 없다. 또한 농산물의 경우 유류와 비료 등 생산비용이 증가해 무리하게 가격 조정에 나설 경우 농가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정부에 부담이다.
◇ 세 달 연속 물가 상승세…이상기후로 농산물 가격 급등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8% 올랐다.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7월 6.3%로 정점을 찍고 내림세를 보이다, 지난 7월 2.3%를 기록한 이후 다시 오름세로 전환했다. 8월에는 3.4%, 9월에는 3.7%, 10월에는 3.8% 등 3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요인으로는 농산물과 유가 불안이 꼽힌다.
농축수산물은 전년동월대비 7.3% 상승했다. 전년동월비 물가 상승률 기여도는 0.65%포인트(p)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3.81% 중 약 1/6에 해당하는 0.65%p가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분이라는 뜻이다.
농축수산물 중에서도 특히 농산물의 상승폭이 컸다. 농산물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3.5%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5월 14.9%를 기록한 이후 29개월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품목별로는 추석 선물로 많이 찾는 사과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72.4% 상승했다. 사과는 봄철 냉해가 발생해 꽃이 제대로 피지 않고, 착과(과실이 맺히는 것)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산량이 급감해 가격이 폭등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상추(40.7%), 파(24.6%), 토마토(22.8%) 등 채소류도 높은 오름세를 보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10월 초순 기온이 급하강하면서 채소류의 출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게, 채소류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생강(65.4%)과 쌀(19.1%), 닭고기(13.2%) 등도 크게 올랐다.
배추의 경우 지난달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1% 내려갔지만, 향후 전망이 밝지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날 발표한 ‘농업관측 11월호 엽근채소’ 보고서에서 이달 배추 도매가격이 상품 기준 10㎏에 8000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43.9%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파 가격은 상품 기준 1㎏에 2700원으로, 작년보다 50% 가까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장 채소 가격 급등에 쌀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밥상에 ‘쌀밥에 김치’만 올리는 것도 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체감 물가도 오름세를 보였다. 소비자들이 자주 사는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4.6%로 전월 대비 상승폭이 0.2%포인트(p) 커졌다.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우유와 주류, 패스트푸드 브랜드 등이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이달도 체감 물가 충격이 클 전망이다.
지난달 우유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4.3% 올랐다. 우유를 많이 사용하는 아이스크림과 빵 가격도 각각 15.2%, 5.5% 상승했다. 유업체들이 원유 가격 인상 여파로 지난 1일부터 우유제품 가격을 올린 만큼, 11월에도 ‘밀크플레이션’이 이어질 전망이다.
소주(0.4%)와 맥주(1.0%) 물가는 지난달에는 안정적 흐름을 보였지만, 주류 업체가 지난달부터 출고가를 인상한 여파가 11월 통계부터 나올 것으로 보인다.
◇ 물가총력전 나선 정부,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 가동
하반기 물가가 안정적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정부는 비상 대응에 돌입했다. 당초 예상보다 물가가 빠르게 잡히지 않고, 오히려 기후와 대외 환경이 상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날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했다. 각 부처 차관은 물가안정책임관이 돼 각 부처별 소관 품목의 물가 관리에 나선다. 아울러 모든 부처가 상시로 시장에 나가 물가 상황을 점검하고 현장 애로를 조치할 방침이다.
우선 농림축산식품부는 11월 김장철을 앞두고 김장비용 부담 완화 정책을 추진한다. 김장 주재료인 배추·무와 공급 감소가 우려되는 고춧가루, 대파 등 농산물은 수입산을 포함해 정부비축물량 1만1000톤을 시장에 방출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을 앞두고 가격이 급등했던 천일염은 1만톤을 전통시장과 마트 등에 시중가격 대비 30% 수준으로 할인해 공급한다. 농수산물 할인지원 예산도 전년(138억원)보다 대폭 증액한 245억원을 투입한다.
농수산물 할인 지원으로 소비자의 구매 부담은 줄였지만, 소비자물가 통계에는 할인 전 가격이 잡혀 농수산물 할인 지원이 물가 안정 효과로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하는 농수산물 할인쿠폰이 소비자의 최종 결재 단계에서 적용될 경우, 구매자가 실제 내는 비용은 감소하지만 통계 조사에는 할인 전 가격이 들어가는 문제가 있었다”라며 “농수산물 할인쿠폰 효과가 통계 조사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대형마트 등에 가격 표시를 할인쿠폰 적용가로 게재해달라고 협조를 구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10월 하순부터 농산물 출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11월엔 농산물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체 소비자물가 흐름도 당초 예상보다 하락속도가 완만하지만 점차 안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보현 기재부 물가정책과장은 “식료품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3.2%로 전월대비 0.1%p 하락하는 등 추세적으로 물가 둔화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면서 “석유류 가격도 11월에는 전월비 하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중동지역 불안이 지속되고 있어 향후 유가 흐름 전망이 어렵다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장 과장은 “중동사태 전개에 따라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등락을 거듭하는 등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해 모든 부처가 소관 품목의 수급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겠다. 특히 주요 먹거리 가격 안정에 총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