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주년 광복절을 맞은 지난 8월 15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대형 태극기 앞에서 어린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힘차게 뛰고 있다. /뉴스1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IFS)이 한국의 미래 정체성으로 ‘초일류 개방적 네트워크 강대국’을 제시했다. IFS는 폐쇄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중국몽(夢)이나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로 불리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거리를 두고 철저히 한국의 국익적 관점에 따라 국가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IFS는 7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로벌 한국’을 주제로 낸 첫 번째 보고서 ’강대국 외교 구상:한국 주도 동심원 전략’에서 “개방적 네트워크 국가 전략은 자유를 확대하면서, 세계 각 지역에서는 무역과 통상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축적한다”면서 “강대국 한국이 취해야 할 국가 정체성은 폐쇄적 민족주의보다는 개방적 네트워크 국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IFS는 한국이 이념을 떠나 정체성부터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향점은 ‘만사한통(萬事韓通)’이다. 경제, 외교, 문화 각 분야에서 세계가 한국을 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IFS는 개방적 네트워크 강대국의 핵심 과제로 “해외의 기술, 인재, 자본이 한국에 자유롭게 들어와 산업, 과학기술 혁신을 일구어내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을 꼽았다. 이어 “21세기 한국의 산업 혁신 전략은 기존의 추격형 모델에서 선도형 혁신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산업 분야에서는 주력 산업 발전 전략과 미래 기술 선도 전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IFS는 산업 혁신을 위한 구체적인 과업으로 글로벌 R&D 센터 유치를 강조했다. 보고서는 “최근 디지털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R&D 센터의 탈중국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만약 한국이 10개 정도의 글로벌 R&D 센터를 유치한다면,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지식생산 활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물류와 금융의 허브 역할도 강조했다. IFS는 “인도·태평양을 기반으로 물류 거점을 확보하고, 금융 기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초일류 ‘개방적 네트워크 강대국’이라는 미래 한국의 국가 정체성에 부합한다”면서 “통상과 물류의 중심지인 동시에 상품거래의 중심지이고 이와 관련된 금융 및 법률 서비스 중심지이다. 여기에 더해 항만과 철도의 교통 인프라 구축 및 보유도 핵심적인 요소”라고 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고민해볼만한 과제도 던졌다. “지폐 초상화부터 조선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IFS는 “국가가 쓰는 지폐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나라의 지향점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이라면서 “한국 지폐의 초상화 선정은 기이하다. 전원이 15~16세기 조선 전기의 인물들이다. 근대는 고사하고 조선 후기의 인물도 없다”고 했다.

IFS는 이에 대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이념은 성리학인가”라며 “외국인이 보면 어리둥절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 한국 사회의 첨예한 진영 대립을 감안할 때 근대사 인물 선정에 합의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면서 3·1 운동의 상징적 장면을 지폐의 삽화로 선정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혁신을 위해 민간 재단을 확대하라는 제안도 내놨다. 보고서는 “재단을 통해 가업 승계 및 부의 상속을 제도화하는 대신 기업 수익금을 재단에 귀속시켜 공익사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미국의 록펠러, 게이츠 재단을 비롯해 독일 보쉬, 네덜란드 이케아, 덴마크 칼스버그 재단 등은 상속 과정에서 형성된 민간 자본이 혁신을 지원한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원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명예원장을 맡은 IFS는 세계적 수준의 국가 싱크탱크를 목표로 지난해 4월 출범했다. 이번 보고서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민주주의, 팬데믹, 과학과 기술의 미래, 경제 안보, 인구, 탄소중립 등 총 7개 클러스터에서 연구 성과를 담은 국가 미래 전략을 제안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