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해서 집을 샀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4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가 한동안 1~2%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고려하면서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젊은 세대가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내 집 마련’에 나서는 현재 상황이 우려된다는 의미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5%로 5연속 동결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현재의 긴축적인 금리 수준을 유지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가계부채 증가세를 꼽았다. 가계대출을 포함한 우리나라 가계신용(가계부채)은 지난 2분기에만 1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한국은행의 최우선 정책 목표는 ‘물가 안정’이고 두 번째 정책 목표는 ‘금융 안정’인데, 가계부채가 늘면 금융불균형이 확대돼 금융 안정도 저해될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연착륙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면서도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통화정책은 부동산 가격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며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정부가 도입했던 각종 미시적인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주담대 2분기에만 10조원 이상 급증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가계대출을 포함한 우리나라 가계신용은 9조5000억원 증가한 1862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14조1000억원 늘면서 가계대출이 10조1000억원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2년간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5%로 총 3%포인트(p) 인상하는 통화긴축 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가 3분기 만에 반등한 원인으로 부동산 시장을 지목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미시적인 정책을 펼쳤고, 이후 ‘집값 바닥론’과 금리 인하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 부동산 관련된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많은 사람이 금리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50년 만기 주담대 등을 통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작용해 가계부채가 지난 두 달 동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5대 시중은행이 지난 7월 출시해 지난 21일까지 취급한 50년 만기 주담대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
◇ “당분간 금리 인하 없다…부동산 투자 조심해야”
그러나 이 총재는 당분간 금리가 낮아질 가능성이 낮은 만큼 이런 부동산 투자 행태가 걱정스럽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 10년간 금리가 굉장히 낮았고, 지금 젊은 세대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낮은 금리로 갈 것이라고 예상해서 집을 샀다면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자를 했을 경우 지금의 고금리 기조에서는 이자상환 부담이 상당하고, 당분간 금리가 1~2%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동산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는 취지다.
나아가 연내 금리 인하는 없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지금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고 있어서 금리 인하를 논의하기엔 시기상조”라고 했다. 이날 금통위원들은 최근 가계부채 흐름 등을 고려해 최종금리 수준을 연 3.75%로 열어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 “가계부채, 미시정책으로 조정해야”
다만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는 미시적인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풀었던 부동산 규제를 회수하는 미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는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도 약화시킬 수 있어 중앙은행의 관심 사항이지만, 가계부채 관리는 대부분의 수단이 정부에 있다”며 “한국은행의 역할은 어떤 정책을 어떤 속도로 하는 게 한국 경제에 가장 안정적이고 좋은지 정부에 정책 자문을 하고 유동성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다. 이 비율을 점진적으로 80% 수준으로 낮추는 게 한국은행의 목표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는 게 제가 한국은행 총재가 된 이유 중의 하나”라며 “그 책임을 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