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각파도에 휘청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이 쏘아올린 달러화 초강세 현상인 ‘킹달러’(King Dollar)와 채권금리 상승이 국내외 금융·외환시장을 흔들면서 경기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대내외 악재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면서 경기가 침체되고 자산시장 거품이 무너지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초대형 위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급격한 금리인상 기조 속에서 주가가 떨어지고,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해지면서 주택가격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채권시장이 발작 수준으로 요동치면서 자금시장도 급속도로 경색되고 있다. 기업의 ‘자금줄’인 회사채 발행이 부진한 가운데 최근 강원도 레고랜드 건설을 위해 발행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가 터지면서 시중 자금이 말라붙는 ‘돈맥경화’ 현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돈줄이 막힌 기업들이 은행 창구로 몰려들면서 은행마저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우관에서 만난 최상엽 연세대 교수는 “최근 회사채 시장 부진에 기업공개(IPO)도 줄줄이 취소되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은행마저 대출 문턱을 높이는 상황이 연말까지 지속되면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경색(credit crunch)이란 금융시장에서 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뜻한다. 신용경색이 심화되면 견실한 기업들도 일시적인 자금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최상엽 경제학부 교수가 20일 서울 연세대 대우관 교수연구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거시경제 분석과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2.10.20 /남강호 기자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최상엽 교수는 10년 넘게 불확실성과 시장 변동성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연구해온 학자다. 그는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행이 치솟는 물가를 잡고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돈줄을 죄는 긴축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정부가 경기 침체 등을 우려해 이에 상충하는 완화적인 정책을 쏟아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레고랜드 사태가 더 큰 신용경색 위험으로 번지기 전에 사전 차단을 하는 의미에서 금융당국이 시장에 강력한 시그널(신호)을 주는 정책은 분명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그 이상으로 한국은행의 긴축 기조에 어긋나는 양적완화 정책을 밀어붙이면 최근 초대형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역풍을 맞은 영국 사태에서 보듯이 시장 혼란과 불확실성만 더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정책 엇박자로 인플레이션을 잡지도 못한 채 채권시장 혼란을 진화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처하면 더 강한 정책으로 대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가계와 기업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부동산 거래절벽이 집값 급락, 건설사 줄도산 등을 동반하는 부동산 시장 경착륙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 경제의 시스템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이 가계부채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가계부채 문제와 겹치면서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며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은 사실상 부동산이 전부인 만큼,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경우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거래절벽도 확산되고 있다. / 뉴스1

다음은 최 교수와의 일문일답.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은 물론, 영국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적 불확실성도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정책 관련 불확실성을 흔히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불확실성’이라고 부르고, 금융시장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월스트리트(Wall Street) 불확실성’이라고 하는데, 두 가지가 동시에 고조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가계나 기업이 ‘일단 기다려보자’는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중앙은행 통화정책과 정부 재정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는 정책의 실행과 집행에 있어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일관된 스탠스(기조)를 보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경제 주체들의 기대가 잘못 형성되면 불확실성이 장기적으로 더 큰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해 연 3%으로 끌어올렸다. 불확실성 국면에서 통화정책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언급했는데, 그렇다면 한국은행이 앞으로도 강력한 긴축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은행이 내세운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강력한 긴축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한국은행은 고용과 물가 안정에 초점을 둔 미 연준과 달리 물가 안정이 주된 정책 목표다. 물가 안정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만 놓고 보면 여름에 정점을 통과한 모습이지만, 기대 인플레이션(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4%대의 높은 수준이다.

경제 주체들의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한 번 훼손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애매한 정책을 추진하다가 기대 인플레이션을 적정 범위 안에서 안착시키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긴축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세대학교 최상엽 경제학부 교수가 20일 서울 연세대 대우관 교수연구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거시경제 분석과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2.10.20 /남강호 기자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제일 걱정되는 시나리오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가계부채 부실 위험과 결합이 되면서 위기 뇌관이 터지는 것이다. 부동산 호황기에 집값이 뛰면서 가계의 자산도 늘고 이와 함께 금융부채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자산가격이 워낙 빨리 상승했기 때문에 급격한 부채 증가세가 어느 정도 가려졌었다. 소득은 제자리에 부채가 급증했는데도 자산이 늘면서 건전성 지표가 개선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 수도권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서울 마포구 전체에서 한 달에 거래가 10건도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거래절벽이 심하고 주택가격 하락 속도도 예상했던 것보다 가파르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고 금융부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경착륙이 현실화될 경우 시스템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졌고,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경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채권시장이 작고 기업의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경기 침체기에는 은행 대출 수요가 더 증가한다. 최근 회사채 발행이 부진하고 기업공개(IPO)도 막히는 등 기업이 채권·주식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더 어려워지면서 은행 대출 창구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회사채 시장 위축으로 대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당초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해 해당 시장에서 제외된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이보다 심각하다.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은행 대출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은행권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태도를 강화하고 있어 관련 신용 위험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올해 2분기까지 데이터만 보면 당장 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추세가 3분기까지 지속되면 중소기업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동료 교수들과 관련 연구를 진행한 결과 대부 자금 시장에서의 초과 수요가 발생하는 시점, 즉 돈을 빌리고 싶어도 빌리지 못하는 기업이 등장하는 때가 신용경색 위험 신호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처럼 시장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시장 참가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금융위원회의 채권시장안정화펀드(채안펀드) 재가동 방침과 같은 조치는 필요하다고 본다. 레고랜드 사태로 시작된 채권시장 불안이 더 큰 위험으로 번지기 전에 사전 차단을 한다는 의미에서 시장에 강력한 시그널을 주는 정책은 좋지만, 최근 거론되는 한국은행의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 등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긴축 기조에 반대되는 정책을 펼칠 경우 일관성이 깨진다. 정책 엇박자로 혼선이 더 커지면 나중에 더 강한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일러스트=손민균

―원·달러 환율이 1440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뛰면서 외환시장 불안도 커졌다. 달러 강세가 얼마나 지속될까.

“미국이 인플레이션이 꺾이기 전까지 고강도 긴축을 지속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물가가 잡힐 때까지는 강달러 현상도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최소한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지금 수준을 유지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이 바뀌어 에너지 가격이 다시 급등하면 물가와 환율도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망은 큰 의미가 없다.”

―최근의 환율 불안이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국내 경제의 펀더멘탈(기초 체력) 자체가 글로벌 금융위기나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됐기 때문에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다만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당시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졌을 때는 흔히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환율 가치 절하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도 뒤따랐다. 그래서 소비나 투자 위축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경기 회복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러화가 비싸진 측면이 더 강하다. 원화가 가치가 달러화에 비해서는 떨어졌지만, 수출 경쟁을 하는 일본 엔화 등 타국 통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하락했다고 보긴 어렵다. 강달러 기조 속에서 우리 경제 성장세가 둔화될 경우 과거와 달리 수출이 강한 경기 회복을 이끄는 패턴을 보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6.5원 오른 1439.8원에 마감했다. / 연합뉴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최근 강달러 심화에 따른 아시아와 신흥국의 자본 유출 위험을 경고했다. 향후 한·미 정책금리 역전폭 확대, 환율 상승 기대 등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언급하셨듯이 한국은 아직까지는 자본 유출 징조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더 오래, 강하게 이어질 경우 한국도 자본 유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패시브 투자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ETF 소매 투자자의 경우 미국의 긴축과 같은 글로벌 시장 움직임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ETF를 중심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인 2%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현재 추세만 보면 한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그 질문에 답하려면 경기 침체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보통 경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전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기술적인 경기 침체에 해당한다. 기술적인 의미에서는 경기 침체가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경기 침체를 전반적인 경기의 수축 혹은 하방 국면으로 정의한다면 넓은 의미에서는 이미 경기 침체 초입에 들어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라 미국의 긴축, 글로벌 경기 둔화 등 외적인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고 하지 않는가. 국내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려면 미국의 긴축 정책 전환,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등 외부 리스크 요인부터 해소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거시경제 리스크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너무 많지만 굳이 하나만 꼽자면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인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간의 상충 문제다. 한국은 미국의 긴축 움직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높은 수준의 부채가 쌓인 상태에서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가 가장 큰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연세대학교 최상엽 경제학부 교수가 20일 서울 연세대 대우관 교수연구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취미로 만들었던 레고 범선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10.20 /남강호 기자

◇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상엽 교수는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경제학부(03학번)를 2009년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국에서 박사과정 인턴을 마친 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IMF 통계국과 중동·중앙아시아국에서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 경제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시그니처 연구클러스터의 경제학 연구 부문 사업단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금융, 거시경제, 금융시장이며 이 중에서도 불확실성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통화·재정 정책의 전달 경로와 국제적 파급효과 등에 주력해왔다. 아내인 신은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와 슬하에 아이를 두고 있다.

▲1984년생 ▲연세대 경제학 학사 ▲미국 UCLA 경제학 석∙박사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부교수 ▲연세대 시그니처 연구클러스터 사업단장 ▲연세대 기금운용실무위원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