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무역수지가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경기 둔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8월 20일까지 우리나라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55억달러로 불어났다. 이는 무역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66년 만에 최대 규모다. 현재 추세라면 연간 무역적자가 사상 처음으로 300억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말까지 미국, 중국 등의 경기 부진으로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무역수지 적자폭이 더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자, 정부도 서둘러 불안감 진화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열린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최근 달러 강세의 영향으로 환율이 상승하고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는 등 대내외 거시경제 여건이 엄중하다”며 관련 부처에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무역수지 적자 중에도 경상수지는 상당폭의 흑자를 지속하고 있다”며 위기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무역수지에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이전소득수지 등을 합친 경상수지는 올해 상반기(1~6월) 누적 247억8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무역수지는 152억5300만 적자를 냈다.
정부는 아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민간에서는 무역적자가 쌓이면 경상수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심하기엔 이르다고 경고했다.
◇ 정부 “무역적자 중에도 경상수지는 흑자”
최근 기획재정부는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흑자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대해 “무역수지 적자는 연초부터 이어진 에너지 가격 상승에 주로 기인한다”며 “한국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에서도 무역수지 악화를 경험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 대외건전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재화 수출입뿐 아니라 서비스 교역, 해외투자 소득 등 대외부문과의 경제적 거래를 포괄하는 경상수지가 보다 유용한 지표”라며 “경상수지는 6월까지 견조한 흑자 기조를 유지 중”이라고 강조했다.
경상수지는 외국과의 상품, 서비스의 거래와 외국에 투자한 대가로 벌어들이는 배당금, 이자 등의 소득 거래 등을 합산한 통계다. 크게 상품수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이전소득수지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가 무역수지와 연동된다.
무역수지는 재화의 수출입 격차를 뜻하는 상품수지와 비슷하지만, 두 지표는 집계 방식이 달라 결과적으로 액수에서 차이를 보인다. 무역수지는 통관 기준 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로, 실제 상품이 세관 당국에 신고한 시점이 기준이 된다. 상품수지는 소유권 이전 기준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무역수지에는 잡히지 않는 중계무역과 가공무역까지 포함된다.
앞서 김영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금융통계부장은 “상품수지에는 수출과 수입의 격차에 더해 선박 운임과 보험료, 가공무역 등이 반영되면서 조정을 거치기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가 반드시 상품수지 적자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6월 기준 우리나라 상품수지는 35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한 반면, 무역수지는 25억7500만달러 적자를 냈다.
일례로 선박 수출을 보면 무역수지는 선박이 최종 인도되는 시점에서만 통계에 잡힌다. 반면 상품수지는 조선사가 선박 건조 과정에서 받는 선수금, 중도금, 잔금 등을 반영한다. 외국 기업이 국내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할 때 무역수지의 경우 통관 기준 수입액으로 집계하지만, 상품수지는 외국 기업간 거래는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수입액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무역수지의 수입액이 상품수지 수입액보다 큰 경향이 있다. 지난 6월만 놓고 보면 무역수지 기준으로 집계한 수입액은 602억달러로, 상품수지 수입액(559억4000만달러)보다 약 43억달러 더 많았다.
◇ 상품수지도 전년比 반토막…경상수지 전망도 하향
경상수지에는 무역수지와 연동되는 상품수지 외에도 여행·운송수지 등 서비스수지, 임금·배당·이자 흐름을 뜻하는 본원소득수지, 거주자와 비거주자 사이에 대가 없이 주고받은 무상원조, 증여성 송금 등 이전소득수지까지 포함된다. 범위 자체가 더 넓기 때문에 재화 수출입이 악화되더라도 다른 항목이 개선되면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247억8000만달러 흑자로, 앞서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를 웃돌았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운송수지를 포함한 서비스수지가 예상보다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 여파로 수출화물운임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 덕에 운송수지 흑자폭이 확대됐고, 그 영향으로 서비스수지도 올 상반기 5억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배당수입·투자수익이 늘면서 본원소득수지도 2011년 흑자 전환한 뒤 매년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는 올 들어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올 상반기 상품수지는 200억1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상반기(384억3000만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입이 수출보다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최근 무역수지가 적자 행진을 보이고 있는 이유와 비슷하다.
한국은행은 하반기 들어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의 경기 부진의 영향으로 수출 둔화폭이 확대되면서 성장 흐름이 약화되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기존 예상보다 축소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올해 연간 경상수지 전망치를 기존 500억달러에서 370억달러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가 247억8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122억2000만달러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올해 경상수지는 상품수지를 중심으로 흑자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축소될 것”이라며 “상품수지는 무역수지 적자흐름이 이어지면서 흑자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면 상품수지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 전문가 “무역적자 지속 자체가 경기 부진 의미”
경제 전문가들은 무역수지 적자로 당장 우리나라의 대외건전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는 정부 주장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무역적자폭이 확대되는 상황 자체가 경제 성장을 막는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이유로 무역적자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상품수지가 악화되면서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는데, 이 경우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인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보유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경상수지가 흑자인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그러나 무역수지가 계속 적자라는 것은 전반적인 경제 상황의 부진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는데도 수출이 부진한 사실을 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