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유예 등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들로 버텨온 자영업자들의 채무상환위험이 내년을 기점으로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에 대비해 정부가 자영업자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보다 채무이행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금융지원 정책을 전환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는 “자영업자 채무상환위험이 올해까지는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2023년 이후 저소득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에 따르면, 자영업자대출은 지난 3월 말 현재 960조7000억원으로 코로나 직전 대비 40.3% 증가했다. 취약 차주가 보유한 자영업자 대출의 경우 88조8000억원 규모로, 코로나 직전에 비해 30.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우선 그간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들이 자영업 가구의 채무 상환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금융지원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가정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실현된 DSR을 비교해볼 때 하위 30% 저소득 가구의 DSR은 4.6%포인트(p) 낮아졌다는 것이다. 소득 대비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금융지원 조치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불균형 누적, 회생 불가 자영업자의 구조조정 지연, 잠재 부실의 이연·누적 등 부작용을 유발했다고 평가했다. 일례로, 코로나 이후 사업 소득이 없는 자영업자 비중은 상당폭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폐업률은 오히려 낮아지면서 그 하락 폭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부동산업 대출이 많이 증가하는 양상까지 보였다.
한은은 ▲매년 50bp(1bp=0.01%p) 대출금리 상승 ▲9월 금융지원 종료 ▲가구당 600만원 손실보전금 지급 등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향후 자영업 가구의 DSR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올해까지는 채무상환위험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 가구의 DSR 추정치는 지난해 40.0%에서 올해 38.5%로 소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금융지원조치가 종료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따른 매출 회복과 손실보전금 지급 효과가 유효할 것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내년엔 DSR이 46.0%로 치솟을 것으로 추정됐다. 금융지원 종료에 따른 영향이 본격화하는 데다 손실보전금 지급 효과도 사라지면서, 채무상환 위험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나 그 영향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저소득 가구의 DSR은 2022년 34.5%에서 2023년 48.1%로 급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소득 가구(38.6→47.8%)와 고소득 가구(39.5→44.4%)의 변화보다 더욱 극적인 상승을 보인 것이다.
자영업자 대출이 부실화하면 주로 비은행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한은은 내다봤다. 카드사 등 여신전문업권과 저축은행업권의 경우 취약 차주의 비중이 높고 담보·보증 대출 비중이 작아, 이들 업권의 대출부터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은은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지원정책 방향을 유동성 지원 중심에서 ‘채무이행 지원’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지원 조치를 단계적으로 종료하되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진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채무 재조정, 폐업 지원 사업 전환 유도 프로그램을 통한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비은행금융기관들이 자영업자 대출 취급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대손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추가 적립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