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 사상 최고치 경신, 주가 랠리, 부동산 광풍. 자산가격의 ‘버블’을 우려하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들은 가계와 기업에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렇게 늘어난 유동성은 금융 시장을 밀어올렸다.

최근 경제학계에서는 이 같은 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 원인을 분석하며 김성재 가드너웹대 웰스매니지먼트 교수가 재조명한 ‘V의 공포’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통화 유통 속도를 의미하는 V가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달리 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는 이유가 바로 V의 차이에서 온다고 본 것이다.

통화 유통 속도는 학계에서는 자주 등장했으나 언론 등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개념이다. 그는 현재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주식시장, 부동산 등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산 시장의 가치 상승을 통화 유통 속도의 변동으로 인한 것으로 봤고, 이런 상승분을 물가 평가 지표에 포함해 통화 정책 등을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통화 유통 속도의 상승이 결국에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미국 워싱턴 D.C.연방인쇄국에 달러 지폐 뭉치가 쌓여 있다.

◇통화 유통 속도=돈의 평균 회전율!

조선비즈는 미국 체류 중인 김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통화 유통 속도 개념을 풀어봤다. 통화의 유통속도는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가 1911년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 ‘통화의 구매력’에서 경제내 총생산지출과 통화량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김 교수는 통화 유통 속도를 “돈의 평균회전율”이라고 생각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유통 속도 개념을 주식 시장에 비교해보자. 어떤 회사의 유통 가능한 주식 수가 100만주인데 하루 거래량이 1000만주면, 한 주당 평균 10회 거래된 것이고 주식회전율은 10배다. 마찬가지로 어떤 경제에 돈의 총량이 1조원인데 한 해에 생산되고 거래된 재화와 용역의 총금액이 10조원이었다면 어떨까. 1원짜리가 그 해에 평균적으로 10회 지불된 것으로 볼 수 있고, 통화의 유통 속도는 10이다.

명목 GDP(평균물가에 1년간 팔린 재화·용역을 곱한 값)를 중앙은행이 찍어내 시중에 푼 돈의 총량, 즉 ‘총통화량’으로 나누면 통화 유통 속도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 우리나라 명목 GDP는 1898조원이고 작년 말 M2기준 총통화량은 3233조원인데, 그렇다면 통화 유통 속도는 1898조원을 3233조원으로 나눈 0.59로 계산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가계·기업에 직접 현금 쥐어준 코로나 대응→ 자산시장 버블 유발

김 교수는 통화 유통 속도가 최근 급등하고 있다며 “2분기 들어서 경제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올해부터는 정부가 가계와 기업에 현금을 직접 꽂아주는 방식 등의 ‘직접 재정 투입’으로 소득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돈들이 자산시장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지적이다. 그는 “자산시장의 상승으로 통화 유통 속도가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며 “물론 통화 유통속도의 상승은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에서 버블이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음에도 연준이 꾸준히 한달에 1200억달러씩 채권을 사들이고 유동성 주입을 멈추지 않았다”며 “그 영향으로 돈이 원유 등 원자재 상품시장,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시장, 그리고 부동산시장까지 전방위적으로 위험자산에 투자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던 상점과 기업들이 다시 문을 열면서 소득도 빠르게 회복되면서 통화 유통 속도에 대한 반등 압력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통화 유통속도의 반등은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며 “자산시장까지 포함할 경우 가격이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와있다”고 했다.

◇민간으로 풀린 정부 돈, 물가 상승 동반‥”금융위기 때와 달라”

그는 “코로나19 경제 위기 초반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처럼 통화 유통 속도가 상당히 낮았다”며 “돈이 민간 부문의 투자나 소비로 연결되지 않았고 그 여파로 소득이 빠르게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때는 여신시장의 주축인 주택담보대출시장이 거의 빈사 상태에 빠지고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꺼렸다. 이른 바 여신 경색 현상이 경제를 강타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은행들은 연준에 채권을 팔고 지급받은 현금을 다시 연준에 있는 지불준비금 계좌에 예치하고 대출을 하지 않았다”며 “돈이 연준과 은행 사이에서만 돌고 돌았기 때문에 총통화량은 증가했지만 경기 회복이 느리게 진행돼 통화 유통 속도가 상당히 낮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코로나 위기 때에는 금융위기 당시의 기억에서 교훈을 얻어 미국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 모두 직접 현금을 가계와 기업들에 꽂아줬다”며 “두 정부에 걸쳐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GDP의 20%에 해당하는 5조1000억달러를 직접 주입했고, 주입된 돈들이 작년 상반기에 폭락했던 주식시장으로 대거 몰려갔다”고 분석했다.

◇”자산 가격 변동 반영해 소비자물가지수 개편해야”

김 교수는 기존 소비자물가지수를 개편해 자산시장의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주택 가격 상승은 서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소비자물가지수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여기에 근거해 내린 정책적 처방의 효과가 한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CPI 산정 방식의 예를 들었다. 미국은 주택보유부문이라는 항목이 전체 CPI 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다. 그는 “주택가격의 상승을 CPI에 반영하고자 미국 노동부통계국은 집주인들에게 ‘당신이 집이 아닌 차 같은 곳에서 생활하면서 당신 집에 세를 주면 얼마나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진다”며 “정부가 조사하는 것은 주택 가격 수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주택을 세놓아 받을 수 있는 가상의 월세”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경우 미국처럼 월세가 더 보편화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집 값을 직접 반영하는 구조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당신이 보유하고 있는 집의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현재 집값은 얼마입니까’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집값이나 자산가격을 제대로 반영해주면 중앙은행은 그 통계에 기반해 보다 적시에 금리정책을 조정하고 가격거품을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현재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자산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이를 중요한 정책지표로 사용하는 중앙은행은 물가에 별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뒷짐지고 빠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인기가 없으나 효과가 있는 금리정책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가 조세를 비롯한 다른 정책 수단들을 써봐도 저항만 거세질 뿐 큰 효과가 보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성재 미국 가드너웹대 교수./본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