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기업이 우주 발사체를 쏠 수 있는 전용 발사장 완공이 2031년입니다. 7년 뒤에 발사장을 다 짓고 나면 정작 발사체를 쏠 기업이 하나도 안 남아있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작년 말에 만난 한 국내 우주 발사체 개발 기업 임원의 말이다. 이 임원은 작년 5월 우주항공청이 출범하고 정부가 ‘뉴스페이스’ 시대를 천명하면서 기대가 컸지만, 정작 바뀐 건 없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발사장은 우주 개발과 탐사의 출발선과 같은 인프라다. 발사장이 없으면 발사체를 쏠 수도 없고, 위성이나 탑재체도 우주에 보낼 수 없다. 민간 기업이 중심이 되는 우주 경제를 이야기하면서 민간 기업이 쓸 수 있는 발사장 하나 없다는 건 창피한 일이다. 정부도 필요성을 알고 몇 년 전부터 민간 발사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환경영향평가와 각종 규제를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우주청이 출범했지만 바뀐 건 없다. 2031년에 민간 발사장을 완공하겠다는 목표는 몇 년 째 그대로다.
맘 놓고 발사체를 쏠 발사장이 없으니 민간 기업들은 발사장을 구하느라 한 겨울에도 발바닥에 땀이 날 지경이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제주도 해상에서 발사를 준비하다 풍랑으로 해상 발사장이 난파하면서 발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사용하는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이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고흥 발사장을 대안으로 찾고 있지만, 이미 잡혀 있는 스케쥴이 많은 탓에 여의치 않다.
이노스페이스(462350)는 작년 3월 브라질에서 시험발사체 ‘한빛-TLV’를 쏘아 올렸고, 앞으로도 브라질과 노르웨이에서 발사를 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발사가 어렵다고 보고 아예 처음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기점으로 미국의 민간 우주 기업들의 주가는 일제히 급등했다. 인튜이티브머신스, 로켓랩 주가가 하루 만에 30% 안팎 올랐고, 스페이스X에 투자하는 데스티니테크100 펀드 주가도 하루에 9% 가까이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성에 성조기를 꽂겠다고 취임사에서 강조한 기대감이 기업들의 주가에 반영됐다. 블루오리진이 재사용 발사체 첫 시험 발사에 성공하는 등 미국의 민간 우주 발사체 시장은 연초부터 뜨겁다.
제대로 된 발사장 하나 없는 국내 민간 우주 기업들에게 미국의 들뜬 분위기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민간 발사장 건설이 시급하다고 건의를 해도 돌아오는 말은 2031년까지 기다리라는 말 뿐이다. 우주청이 정말 뉴스페이스 육성 의지가 있다면 몇 년 전에 세운 2031년 완공 계획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게 아니라 다만 몇 년이라도 앞당기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 기업 임원의 말처럼 발사장을 짓고 나니 발사장을 쓸 국내 기업이 한 곳도 남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
[이종현 과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