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복합시설은 기본적으로 골목상권, 전통상권, 경제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 복합시설 설치를 반대한다.”

19대 대선을 2개월 여 앞두고 있던 2017년 2월 13일, 당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이 신세계가 추진하던 광주광역시 복합쇼핑몰에 반대하면서 한 말이다. 을지로위원회는 일주일 뒤 복합쇼핑몰 건립 반대 입장을 담은 공문을 윤장현 광주시장에게 보냈다.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대선 후보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 결과 광주는 복합쇼핑몰이 하나도 없는 도시로 남았다.

기가 막힌 일이다. “복합쇼핑몰 유치는 광주시장이 시민 뜻을 받들어 잘 추진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광주에 복합쇼핑몰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하자 한 말이다. 그런데 광주시장이 추진하던 것을 민주당이 나서서 없던 일로 만들었던 게 5년 전이다. 이번에도 ‘상생과 연대의 광주정신을 훼손하는 것’(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이라며 반대 입장이 나왔다.

반대 근거도 불충분하다.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인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피해를 입는다는 게 민주당이 복합쇼핑몰 입점을 반대한 논리다. 그러나 김현아 건국대 경영학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은 외부 고객을 유치하고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해 지역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다. 경기 하남시의 경우, 스타필드 하남점 출점 후 전통시장에서 이탈하는 고객보다 새로 유입되는 고객이 더 많아 전통시장 고객이 5~6% 순증했다.

또 한국노동연구원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복합쇼핑몰 입점이 해당 지역 상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결과 복합쇼핑몰 입점은 해당 시·군·구의 도소매업 사업체 수를 7.1% 증가시켰다. 고용도 따라서 늘어난다.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인근 상권이 활성화된다는 증거다.

창원시는 신세계가 복합쇼핑몰 입점을 추진하자 소상공인 단체 반대로 미뤘다가 시민 200여명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결과 입점 찬성이 71.2%로 반대(25.0%)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민주당 소속인 허성무 창원시장은 복합쇼핑몰 입점에 부정적이었으나 공론화위의 찬성 결정을 수용했고,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첫 삽을 떴다.

안타깝게도 여권이 학계의 연구 결과와 여론에 따르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서울에서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반대에 밀려 상암 롯데몰 개발이 지연됐다. 민주당은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처럼 월 2회 의무휴무를 강제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용섭 시장은 야당을 향해 “우리(광주시)가 시민 편의, 소상공인 보호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오고 싶은 기업은 오고, 유치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5년 전 민주당 반대로 복합쇼핑몰 입점이 무산됐고, 그 뒤 아무런 구체적 움직임도 없었다는 것을 광주시민들은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광주시민들은 직선거리로 140㎞ 떨어진 대전으로 쇼핑하러 가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인류는 18세기부터 쇼핑을 시작했다. 산업혁명 덕분에 생존에 필요한 욕구를 충족한 후 남은 가처분 소득을 소비하는 ‘쾌락을 위해서였다. 결코 소상공인과 ‘상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복합쇼핑몰 입점 반대는 그 300년간의 진화를 가로막는 행동이다. 정치권은 쇼핑할 자유를 막지 말라. 그래야 소상공인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