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5일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렸다. 이날 정 교수에게 징역 7년의 검찰 구형을 읽은 건 고형곤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 부장검사였다. 고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을 지내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직접 담당했다. 이후 조국 일가 재판에 직접 참석하며 공판유지도 담당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의 에이스 검사였던 고 부장검사는 조국 일가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던 작년 8월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장으로 좌천됐다. 고 부장검사는 이후 재판이 열릴 때면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 24일 발표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고 부장검사는 포항지청장에 발령이 나면서 다시 한 번 좌천됐다. 서울에서 대구로, 다시 대구에서 포항으로 불과 1년 만에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고 부장검사가 조국 일가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길 위에서 버려야 할 시간도 늘어난다.
고 부장검사와 함께 조국 일가 재판에 참석하고 있는 원신혜 검사도 서울중앙지검에서 포항지청으로 자리를 옮긴다. 원 검사는 인사가 난 다음날인 지난 25일에도 조 전 장관 부부 재판에 참석했다. 원 검사는 직접 마이크를 들고 조 전 장관 부부의 딸 조민씨에게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 일가 수사와 재판에 참여한 검사들의 수난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한동훈·양석조·송경호 등 직급에 상관없이 조국 일가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은 모두 좌천돼 한직을 떠돌고 있다. 정경심 사건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강백신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통영지청으로 발령이 나 재판 때마다 왕복 10시간을 고속버스에서 보냈다.
이번 검찰 인사에서 강 부장검사가 서울동부지검으로 돌아왔지만, 다른 검사들이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검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조국 일가 재판은 시간이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항소심이 시작됐고, 조 전 장관 본인에 대한 재판도 본격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공판을 담당하는 검사들을 떨어뜨려 놓은 건 법무부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재판에 개입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에 출석해 이번 인사에 대해 ‘조화와 균형 있게, 공정하게 했다’고 자평했다. 박 장관의 입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나온 걸 보고 실소가 터져나왔다. 조국 일가에 대해 청년들이 분노한 이유는 자녀 입시비리 과정에서 드러난 ‘불공정’ 때문이다. 불공정을 엄호하기 위한 방탄 인사를 해놓고 공정을 입에 올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번 인사를 기획한 법무부 간부들은 모두 승진했다. 이정수 검찰국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김태훈 검찰과장은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로 승진했다. 권력비리에 맞서 싸운 검사는 좌천되고, 권력자의 옆에 선 검사는 영전했다. 박범계 장관의 안경에 김이라도 서린걸까. 모두가 불공정을 가리키는데 혼자만 공정이라고 읽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