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고강도 제재와 경기 침체 우려에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계속되면서 올해 상반기 중국 반도체 산업 매출은 전년 대비 20% 넘게 늘었다. 전 세계 반도체 산업 매출이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8일 중국 경제매체 이카이 부설 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에 상장된 102개 반도체 업체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22% 늘어난 2조위안(약 396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상위 10개 반도체 업체의 매출 성장률(17%)와 비교해 5%포인트 높은 수치다.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인 SMIC가 올해 상반기 전년 대비 52.8% 늘어난 245억위안(약 4조8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성장을 이끌었다. 이카이 연구소는 “주요 7개 반도체 업체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넘게 늘어나는 등 중국 반도체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라고 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산업에 사용하는 반도체 개발 업체들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내셔널칩 사이언스앤테크놀로지가 대표적으로, 이 업체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20배 늘었다. 화웨이가 미국 제재로 부진한 상황에서 중소형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내수 시장이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도체를 소비하고 있지만, 반도체 자급률은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장비 반입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제재가 계속되면서 세정(웨이퍼를 씻어내고)과 식각(불필요한 부분을 깎는) 등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낮은 반도체 장비 내재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중국 대표 반도체 세정·식각 장비업체인 북방화창(Naura Technology Group), 에이맥(Advanced Micro-Fabrication), 성메이상하이(ACM Research)의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넘게 늘었다.
반도체 자립을 향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보고서에서 “20%에 못 미치는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지만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라며 “불과 5년 전까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3.8%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조달 특혜가 계속되면서 중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한국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중국과 한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 차이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라며 “선제적인 투자로 기술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