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떠났던 에너지 기업들이 러시아 복귀를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에서의 무력 사용 배제에 합의하면서, 이를 위한 러시아의 제재 해제 요구를 미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로이터

26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석유 거래 기업인 군보르 그룹의 토브욘 톤퀴비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FT(파이낸셜 타임스) 상품 서밋에서 “제재가 우리가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완화된다면, 왜 러시아로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는 대러 제재가 완화될 경우 러시아로 복귀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글로벌 원자재 거래업체인 머큐리아 에너지 그룹의 마르코 뒤낭 CEO 역시 “제재가 해제되면 러시아로 돌아가 원자재 분야에서 우리가 할 역할이 있는지 알아볼 것”이라며 “제재와 관련해 다소 신중하지만, 제재가 해제된다면 반드시 러시아에서 기업 가치를 높일 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 러시아에서 대규모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의 대러 제재가 강화되면서, 러시아에서의 계약과 파트너십을 해지하고 러시아산 석유와 금속 거래에서 손을 떼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 23일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미국의 중재로 흑해에서 휴전 협상에 나서면서부터다. 러시아는 합의 사항에 동의하면서도, 이를 위해 농산물과 비료 수출에 대한 금융 제재 해제, 국제 결제 시스템(SWIFT) 연결 복원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미국도 러시아의 요구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요구 조건에 동의했느냐’는 질문에 “모든 조건을 고려 중”이라며, “5~6개의 조건이 있으며, 우리는 모든 조건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면, 러시아산 에너지가 국제 시장에 복귀할 수 있게 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가스에서 알루미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러시아 원자재의 유럽 복귀로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서방의 대러 제재 해제에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네덜란드 에너지 기업 비톨의 러셀 하디 CEO는 “내 말이 틀릴 수 있고, 제재 해제가 예상보다 더 빨리 일어날 수 있다”면서도 “우리는 제재 해제가 1년 또는 2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는 러시아 복귀 준비에 대해 조급함이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원자재 유통 기업인 트라피구라 그룹의 리차드 홀텀 CEO는 미국의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다른 제재가 남아 있을 경우 영국인 직원이 많은 회사 특성상 러시아 복귀가 복잡해질 것이라며, “모든 제재가 철회돼야만 러시아 복귀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이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노력의 일환으로 러시아 제재 완화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면서 “유럽 관리들은 제재가 완화되더라도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피하려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