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미국 안팎의 자산가들이 자산을 스위스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4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지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 내 납세 요건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스위스 내 은행 및 투자 계좌를 개설하려는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자산 관리 회사 마세코(Maseco)의 조시 매튜스 공동 창립자는 FT에 “이런 움직임은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은행 시스템 붕괴에 대한 우려가 퍼졌을 때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최대 금융그룹 중 하나인 피크테는 자회사 ‘피크테 북미 어드바이저스’의 미국 고객 수요가 상당히 늘었다고 말했고, 한 자산관리사는 최근 한 미국 자산가가 500만~1000만달러(약 73억~146억원) 규모의 자산을 스위스로 옮기려는 작업을 돕고 있다고 FT에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해외금융계좌신고법(FATCA)에 따라 미국인은 스위스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된 스위스 자산운용사나 자산관리회사를 통해 계좌를 개설하고 자산을 운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위스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위스가 여전히 글로벌 자산관리 중심지로서 강력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알펜 파트너스(Alpen Partners)의 피에르 가브리스 대표는 “최근 몇 달 간 미국 고객들로부터 거주지 이전과 자산 운용처 변경에 대한 문의가 계속 늘고 있다”며 “특히 트럼프 반대 성향의 고객들이 불안감에 기반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이스라엘, 인도 등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한 일부 고객은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스위스 계좌 개설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스위스 은행은 견고한 보안 때문에 탈세의 온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8년 이후 미국 정부는 스위스의 은행 비밀 규정을 활용해 탈세를 도운 스위스 은행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고, 2013년 이후 스위스 은행들은 FATCA를 준수하고 미국 고객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재편한 바 있다.
자산관리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스위스 은행들이 미국 내 등록 법인을 두고 고객의 자산은 스위스에 보관하면서, 미국 거주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고 FT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