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빅스텝’(big step)을 단행하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물경제에 충격이 큰 조치지만, 이를 감수할 만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급증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AFP 연합뉴스

‘빅스텝’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설정시 통상적인 조절폭인 0.25%포인트 범위보다 큰 조절을 의미한다. 금리가 인상되면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고 자산가격이 하락하며 실업률이 높아지지만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 결국 빅스텝은 실물 경제를 희생해서라도 물가상승을 확실히 잡겠다는 의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유럽중앙은행(ECB)·일본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오랜 기간 조정 기준단위인 0.25% 범위에서의 미세조정(fine tuning)을 통해 경기를 조절해왔다. 지난 1990년대 냉전이 끝난 이후 전세계 차원의 경제 통합이 진전되면서, 임금이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반이 옮겨다니며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시장에 역대급 유동성이 풀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적 차원의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중앙은행들은 통상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 안팎으로 설정하는데, 올해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는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캐나다와 뉴질랜드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두 나라 모두 22년 만이다.

캐나다의 경우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로 3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은 5.3%로 추산했는데,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설정하는 것을 고려하면 2.5배를 넘는 수준이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이번 빅스텝 이후 0.1%가 된 기준금리를 중립금리인 2~3% 수준까지 더 올리겠다고 공표했다. 중립금리란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달성한 상태에서의 금리 균형 수준을 뜻한다.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도 기준금리를 1.0%에서 1.5%로 올렸다. 뉴질랜드 역시 올해 예상 인플레이션이 5.9%로 목표 물가상승률 2%의 3배 수준이다. RBNZ는 “금융통화위원회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나중이 아니라 지금 높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역시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를 3%까지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금융의 중심인 미국의 연준도 다음 달 빅스텝을 결정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13일 미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하반기까지 (기준금리가) 중립 수준 이상으로 가길 원한다”며 “가능한 한 빨리 중립에 근접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중립 금리가 2.25∼2.5%로 추정되고 있고 기준금리는 0.25~0.50%라서 5월은 물론 6월, 7월에도 빅스텝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연준 내에서 ‘매파’로 분류되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3.5%까지 인상돼야 한다”고 말했다. 불러드 총재의 계획대로라면 올해 남은 6번의 통화정책 회의 전부에서 빅스텝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행 역시 총재의 부재(不在) 속에서도 전날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0.25%포인트 높였는데, 이 같은 주요국들의 빅스텝에 선제대응하는 측면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