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경제 성장 둔화와 공급 감소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비하기 위해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와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공급망 붕괴와 에너지 가격 폭등, 노동력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어서다.
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은 이날 사상 최저(0.25%)인 현행 기준금리를 연 0.5%로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7년 만의 첫 금리 인상이다. RBNZ는 이날 통화정책 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완화적 기조를 유지했던 통화정책을 앞으로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추가 금리 인상 계획도 시사했다.
뉴질랜드는 최근 주택 가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가다. 수도 웰링턴 집값이 지난 1년 새 30% 넘게 오르는가 하면 블룸버그통신이 올해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근거로 평가한 ‘집값 거품 심한 나라’ 중 1위에 오르기도 했다. RBNZ는 지난 8월부터 기준 금리 인상을 고려했지만 같은 시기 델타 바이러스 확산으로 거리두기 규제가 강화하면서 이를 연기했었다.
서구 선진국 중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곳은 노르웨이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0%에서 0.25%로 인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크로네(노르웨이 통화)가 전세계 10대 거래 통화 중 하나라는 점에서 노르웨이의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에 따른 글로벌 통화정책 전환의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영국의 중앙은행도 통화정책 기조를 ‘완화’에서 ‘긴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내달부터 테이퍼링(자산 매일 축소)을 시작하고 금리 인상 시점을 2023년에서 내년 말로 앞당기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23일 연준이 공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 연준 위원 18명 중 9명이 내년 중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했다.
FT는 연준 내 조기 금리 인상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며 내년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지난 6월 FOMC 당시 조기 금리 인상에 찬성한 위원은 7명이었지만 이번에는 2명이 늘어난 것이다. 영국 중앙은행(BOE) 내부에서도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시장에선 BOE가 전문가 예상 시점(내년 하반기)보다 앞당겨 2월에 금리 인상을 결정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은 일단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하되 자산매입 규모를 매달 800억 유로 수준에서 3개월간 600억 유로로 줄였다. 유럽 전역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경기 침체가 여전한 상황을 고려하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자산 매입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테이퍼링과는 거리를 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유리한 자금 조달 여건을 만들기 위해 채권 매입 속도의 눈금을 조정한 것”이라며 “테이퍼링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등 긴축 대응이 독이 될 거란 우려도 여전하다. 통상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경제적 수요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현재 상황은 공급망 붕괴와 노동력 부족 등이 겹쳐 일반적인 공식을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FT는 “긴축 시점이 너무 이르면 경제 회복을 방해할 수 있고, 너무 늦으면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할 것”이라며 각국 중앙은행의 ‘균형 감각’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