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부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국 정부는 자국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방불케하는 경쟁을 시작했다고 미국 경제방송 CNBC가 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특히 CNBC는 최근 한국 정부가 발표한 삼성, SK하이닉스의 510조원 규모 투자를 집중 조명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점점 심화된 반도체 공급부족 문제는 차량용 반도체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자, IT, 방산 등 핵심 산업 전반에 걸쳐 확산하고 있다. CNBC는 “이는 단순히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며 2022년, 2023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팹(Fab·생산공장) 투자의 특성상 공장 건설부터 실제 생산, 안정화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 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이사(왼쪽부터), 정철희 네패스 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자국 산업에 직격탄을 맞은 미국, 유럽, 아시아 각국은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 중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최근 한국 정부가 발표한 510조원 규모의 반도체 인프라 투자계획이다. 다만 510조원에서 정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조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3공장(P3) 건설 현장에서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시스템 반도체까지 세계 최고가 돼 2030년 종합반도체 강국의 목표를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반도체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비의 세액공제율을 확대하고 총 1조원 이상의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을 신설해 우대금리로 설비투자를 지원하겠다는 K반도체 대책을 내놨다 . 한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2030년까지 10년 간 5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전문가들은 이같은 한국 정부와 대형 반도체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전시상황'을 방불케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캐나다의 컨설팅회사 미래혁신센터의 아비셔 프라카시 지정학 연구원은 “이번 투자는 미래의 산업적 독립성과 안보를 구축하기 위한 전시 대응 수준의 노력”이라며 “대규모 생산시설을 바탕으로 한국은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휘둘리기 보다는 독자적인 궤도를 결정하는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대규모 투자는 자연스럽게 미국, 중국, 유럽, 대만 등 정부에도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유럽 등도 속속 행동에 나서고 있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500억달러(한화 56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연구개발 지원책을 발표했으며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미국의 제재 이후 지지부진해진 반도체 굴기를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EU 역시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20%를 유럽이 차지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510조원 규모 투자는 해외 주요 매체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반도체 생산능력과 기술 수준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거나 한국,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의 글렌 오도넬 부사장은 반도체 기술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올림픽에 비유하며 “한국, 일본, 미국, 대만, EU, 중국은 모두 반도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기를 갈망하고 있다”며 “팹 건설 하나에 100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단기간 내 공급부족을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현재로서 누가 금메달을 차지할 지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