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선수금환급보증(RG·Refund Guarantee) 발급 규모를 늘리는데 적극 지원하기로 하면서 중소형 조선소의 숨통이 트이게 됐다. RG는 배를 주문한 선주가 조선사에 지급한 선수금에 대해 금융기관이 보증을 서는 것으로, RG를 발급받지 못하면 선박 수주를 할 수 없다. 중소형 조선소는 대형 조선소와 비교해 신용등급이 낮고, 재무 구조가 열악해 그동안 금융기관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게 제한적이었다.
정부는 지난 9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특례 보증 확대 ▲발급기관 다변화 ▲개선된 재무 여건 신속 반영 등을 담은 ‘조선 RG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RG 발급이 원활한 대형 조선소와 달리 한도가 제한된 중소형 조선소 몫을 늘려 더 많은 수주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보통 선박은 2~2년 6개월에 걸친 설계·생산 과정을 거쳐 선주에 인도된다. 뱃값의 약 10%를 계약금으로 받으면 은행이 RG를 발급해 선주에게 준다. 이후 건조 과정에 맞춰 뱃값을 10~20%씩 나눠 받다가, 배를 인도할 때 잔금 60%를 받는 구조다. 조선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에스크로(선주가 낸 대금을 맡아둔 뒤 결제 확정 시 정산하는 시스템) 된 돈을 받아 배를 만든다.
RG 발급이 확대되면 대한조선, 케이조선, HJ중공업(097230) 등 중형 조선사의 수혜가 예상된다. 이들은 최근 선박 수주가 늘면서 모두 흑자로 돌아섰다. 3사 합산 영업이익은 2023년 1318억원에서 작년 1769억원으로 늘었다.
그간 중소형 조선소들은 RG 발급 확대를 요청해왔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손해를 입은 금융기관은 RG 발급을 엄격하게 제한해왔다. 2010년대 초반에는 선박 인도 후 재무구조 악화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조선소도 있었다.
조선업계는 과거와 달리 무분별한 저가 수주를 하지 않아 RG 발급이 늘면 수주가 늘어 재무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대중(對中) 규제 강화로 한국 조선사가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도 있다.
한 중형 조선소 관계자는 “RG 한도가 다 차서 양질의 수주를 놓친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물량은 대부분 중국으로 넘어갔다. RG 발급이 늘면 한국의 중형 조선소가 이들 물량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