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이 보유한 수륙양용 전투함 중 절반이 보수·정비 부실 때문에 작전 투입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분석이 미 의회에서 제기됐다. 올 들어 한화오션(042660)이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사업 두 건을 연달아 따내는 등 국내 조선업체들은 미 함정 MRO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 있다. 비전투함을 시작으로 장기적으로는 진입 장벽이 높은 전투함 MRO 시장도 뚫겠다는 계획이다.

1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은 지난 3일 낸 보고서에서 올해 3월 기준 미 해군이 보유한 수륙양용함 32척 중 절반인 16척이 기대수명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관리 상태가 나쁘다고 평가했다. 미 해군은 법에 따라 가용 수륙양용함을 최소 31척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적기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상당수는 작전과 훈련에 투입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게 GAO의 판단이다.

한화오션이 MRO(유지·보수·정비)를 맡은 미국 해군 7함대 배속 급유함 유콘(USNS YUKON). /한화오션 제공

그간 미 해군은 폐기 예정인 노후 수륙양용함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정비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규 함정 도입 지연으로 노후 함정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륙양용함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조선업 붕괴로 함정 창정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해군이 운용하는 370척 이상의 함정 중 매년 130~150척이 조선소에 입항해 창정비를 받아야 하지만 조선소 설비 노후화와 인력 부족으로 정비 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함정 정비 지연으로 인한 전력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7일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며 “선박 수출뿐 아니라 MRO 분야에서도 긴밀한 양국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배경에도 미 해군 군사력 약화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파트너 국가들에 함정 MRO 지원을 요청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은 사업 수주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 해군 MRO 사업 규모는 연간 20조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미 해군의 정비 조선소 부족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해외 정비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게 업계 예상이다.

한화오션은 올해 하반기에만 3개월 간격으로 미 해군 함정 MRO 사업 두 건을 수주했다. 지난 8월 한국 조선사 중 처음으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쉬라함의 MRO 사업을 따냈다. 미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하며 MRO 사업 입찰 참여 자격을 얻은 지 한 달도 안 돼 수주에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어 석 달 후인 11월 미 해군 7함대에 배속된 급유함 유콘함의 정기수리 사업도 수주했다. 현재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정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화오션이 수주한 MRO 함정은 모두 비전투함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최근 미 GAO가 언급한 수륙양용함처럼 장기적으로는 미 전투함 MRO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전투함이 수가 많고 창정비 규모도 커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존스법에 따라 전투함은 미국에서만 정비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화오션이 올해 6월 미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도 장기적으로 미 전투함 MRO 시장까지 염두에 뒀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후 MRO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함정MRO 수행을 위한 사업장으로 쓸 계획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함 MRO에서 미국의 신뢰가 쌓이면 전투함 MRO 진출도 가능해질 거라 본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내년부터 미 해군 MRO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과 마찬가지로 지난 7월 미 해군과 MSRA를 체결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비전투함 분야부터 상호 신뢰관계를 구축한 후 전투함으로 단계별로 MRO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