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처음 도입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제도에 기아(000270) 노조가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티셔츠 뒷돈 사건’의 여파라는 해석이 나온다. 단체 티셔츠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뒷돈을 챙긴 혐의로 노조 간부가 구속되자 내홍으로 집행부 의사 결정 능력이 상실됐다는 것이다.

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기아 노조는 회계 공시와 관련해 “금속노조가 회계 공시를 결정했고, 기아 노조 또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의원 소집을 진행해 결정해야 했으나 내부 일정으로 대의원 소집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최근 노조 소식지에 밝혔다. 기아 노조는 “이에 따라 올해 10~12월 조합비의 소득공제가 불가하다. 28대 임원 선거 이후 빠른 대응을 통해 조합원들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기아 노조는 지난달부터 진행 중인 신임 노조위원장 선거가 종료되면 회계 공시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기아 노조 조합원들이 받은 문제의 티셔츠. 화가 난 조합원들은 티셔츠를 찢고 항의 문구를 적었다. /조선DB

기아 노조는 ‘내부 일정’으로 대의원 소집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는데, 업계에서는 티셔츠 사건과 관련한 노조 대의원 소집이 열린 11월 6일부터 현 노조 집행부의 의사 결정 능력이 약해진 게 원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11월 1일 기아 노조 총무실장 A씨는 단체 티셔츠 가격을 부풀려 약 1억4300만원을 챙긴 혐의(업무상 배임·배임수재·입찰방해)로 경찰에 구속됐다.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나눠 줄 단체 티셔츠 2만8200벌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입찰 업체와 짜고 원가 1만300원짜리 티셔츠를 1만5400원에 납품하도록 한 뒤에 차액을 챙긴 혐의다. 이 사건은 올해 초 일부 기아 조합원이 “티셔츠 품질이 이상하다”며 국민신문고에 진정을 내면서 알려졌다.

기아 조합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들끓었다. 지난달 6일 대의원 소집에서 “노조위원장과 집행부가 총사퇴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집행부는 활동을 사실상 중단하고 인수인계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신임 노조위원장을 뽑는 28대 임원 선거는 지난달 17일 공고를 시작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금속노조가 11월 14일 회계 공시 참여를 결정하면서 현대차(005380) 노조를 비롯해 금속노조 산하 노조 다수는 회계 공시를 결정했다. 노조 회계 공시 제도에 한국노총 가맹 노조의 94.0%, 민주노총 가맹 노조의 94.3%가 참여했다. 그러나 기아 노조는 회계 공시를 제때 하지 못해 조합비를 낸 조합원들은 연말 정산에서 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검찰은 티셔츠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4일 간부 A씨를 구속 기소했다. 또 이 과정에서 A씨의 범행에 동조하거나 차명 계좌를 빌려준 노조 관계자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