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침체로 국내 와인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이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레드 와인에서 화이트 와인으로 국내 와인 시장 축이 이동하면서 뉴질랜드 와인 점유율이 높아졌다.
28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와인 수입액은 이전 해보다 8.6% 감소한 4억4300만달러(약 6500억원)를 기록했다. 수입량도 전년보다 5.5% 줄었다.
특히 위스키 등 다른 주류 카테고리에 소비자가 몰리면서 전체 주류 시장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10%에서 지난해 8.2%로 1.8%포인트 하락했다.
이 와중에도 지난해 화이트 와인은 2023년 대비 수입량 기준 12.6%, 수입액 기준 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레드 와인 수입량은 10.5%, 수입액은 13% 감소했다.
와인 업계에서는 국내에선 보통 ‘와인 하면 레드 와인’을 떠올리던 시대가 저물고, 개인 취향에 따라 화이트 와인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덕이라고 해석했다.
◇ ‘소비뇽 블랑’의 힘... 뉴질랜드, 국내 화이트와인 시장 석권
국내 화이트 와인 시장은 뉴질랜드가 이끌고 있다. 지난해 뉴질랜드 와인은 수입액은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수입량도 60% 늘었다. 그 결과 뉴질랜드는 지난해 칠레를 제치고 국내 화이트 와인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소비뇽 블랑’이라는 품종을 중심으로 하는 화이트 와인 강국이다.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다. 이 포도를 뉴질랜드 토양에 심으면 보르도산 소비뇽 블랑과 확연히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대체로 자몽과 라임 같은 열대과일 향과 잔디를 깎을 때 나는 푸른 내음을 뿜는다. 입안에서 상큼하게 느껴져 한식과 깔끔하게 어울린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지난해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 국내 시장 점유율은 25%를 넘겼다. 시중에 팔리는 화이트 와인 4병 가운데 1병은 뉴질랜드산(産)이라는 뜻이다.
이유진 뉴질랜드 무역산업진흥청 상무관은 “뉴질랜드 정부는 ‘무결함 정책(No-Fault policy)’으로 수출 와인 품질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며 “어떤 와인을 골라도 큰 실패가 없는 것이 뉴질랜드 와인이 가진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급변한 각국의 와인 수출 지형도 역시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 인기에 불을 붙였다. 뉴질랜드 와인 업계는 최근 중국 와인 시장 침체로 수출 재고가 늘어나자, 한국 시장에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국내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뉴질랜드 와인을 접할 기회가 늘었다.
◇ 2030 여성 취향 저격... 와인 초심자도 부담 없는 접근성
한국 수입와인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에 대한 선호도는 특히 20~30대와 여성 소비자층에서 높게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 여성의 경우 화이트 와인 선호도가 48%로 레드 와인(25%)을 앞섰다.
업계에서는 이를 ‘와인 소비의 세대교체’로 해석했다. 젊은 세대는 와인 브랜드나 유명세보다 본인 취향과 직접 느낀 맛에 더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한국소믈리에협회 관계자는 “소비뇽 블랑은 적당한 산도와 깔끔한 맛으로 여성들이 좋아하는 매운 한식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피크닉 같은 자리에서 가볍게 즐기기 좋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편의점에서 주로 팔리는 1만~2만원대 와인 자리에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이 놓이며 성장을 이끌었다”고 했다.
여성 소비자들에게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이 인기를 끄는 이유로는 높은 접근성도 한몫했다. 국내에 팔리는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은 거의 전량이 돌려 따는 스크루 캡 방식이다. 와인 초심자들이 느끼는 코르크 따기에 대한 부담이 없다.
가볍고 상큼한 화이트 와인 특성상 알코올 도수도 11~13%에 그친다. 13~16%에 이르는 레드와인에 비하면 가볍게 마시기 좋다.
◇ 오세아니아 와인 국내 경쟁도 치열
미리 뉴질랜드 화이트 와인 포트폴리오를 대거 확보한 수입사들은 어려운 와인 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금양인터내셔날은 지난해 이후 오세아니아 와인 상품을 강화해 돋보이는 성과를 냈다. 금양인터내셔날에 따르면 뉴질랜드 유명 화이트 와인 브랜드 ‘라파우라 스프링스’는 지난해 2023년보다 매출이 136% 증가했다. 라파우라 스프링스는 2023년 와인 전문 매체 와인스펙테이터가 ‘올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와인 10선’에서 3위로 꼽은 브랜드다. 라파우라 스프링스는 국내 출시 당시 품절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뉴질랜드와 함께 오세아니아 권역으로 묶이는 호주의 국보급 와인 브랜드 ‘펜폴즈’도 화이트 와인을 중심으로 한 아이콘 와인 시리즈 매출이 7%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다른 호주 와인 전체 수입액은 11% 줄었다.
펜폴즈는 2001년 호주 국가 문화재로 등재된 와인 ‘그란지(Grange)’를 만드는 호주 대표 와이너리다. 호주 와인 역사는 그란지 탄생 전과 후로 나뉜다 할 정도로 명성이 높다.
금양인터내셔날 관계자는 “뉴질랜드와 호주를 아우르는 오세아니아 와인을 국내에 꾸준히 선보이면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전에 선보이지 않았던 우수한 품질 와인을 발굴해 소비자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금양인터내셔날은 ‘어메이징 오세아니아’ 프로모션으로 오세아니아 와인 점유율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이 밖에도 롯데칠성(005300)음료의 ‘킴 크로포드’, 신동와인의 ‘빌라 마리아’, 아영FBC의 ‘오이스터 베이’ 등 각 수입사가 뉴질랜드 와인 브랜드를 앞세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