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너리 직거래와 유통마진 최소화로 와인 값을 지금보다 40% 저렴하게 공급하겠다.2009, 여무상 당시 신세계L&B 대표
그동안 ‘와인값 인하’를 내세워 국내 와인시장을 장악해 온 신세계(004170)L&B가 미국 쉐이퍼 빈야드(Shafer Vineyards) 와인 값을 별안간 18%까지 한번에 올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해 2월 약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들여 미국 캘리포니아 유명 와인 산지 나파(napa)에서도 명성이 높은 쉐이퍼 빈야드를 야심차게 인수했다.
신세계그룹이 미국 와이너리를 인수한 만큼 이전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해당 와인을 마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소비자들은 작년보다 최대 6만원을 더 지불해야 같은 와인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신세계가 쉐이퍼를 인수했다는 뉴스는 전 세계 주류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한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동성(자금)이 급증한 상황이라 유명 와인 산지 포도밭 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뛸 무렵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현지에서도 ‘신세계가 시세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줬다’는 논란이 일었다.
와인컨설팅업체 인터내셔널와인어소시에이츠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이전까지 보통 나파밸리 고급 와이너리 거래가는 직전 해 순이익 15~20배 정도를 기준으로 이뤄졌다”며 “신세계프라퍼티가 쉐이퍼 빈야드 인수에 지불한 2억5000만달러는 순이익 기준 28배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그 여파는 신세계그룹 계열 종합주류기업 신세계L&B가 인수 이후 처음으로 들여온 쉐이퍼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28일 기준 이마트 와인그랩 앱 등 신세계 판매채널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오는 쉐이퍼 빈야드 와인 5종 가격은 최대 18% 올랐다. 값으로 따지면 최대 6만원이 한번에 뛰었다.
가장 고가 ‘힐사이드 셀렉트’는 이전 69만9000원에서 75만9000원으로 6만원(9%) 가량 상승했다. 다음으로 가격대가 높은 ‘원포인트파이브’는 26만원에서 28만1000원으로 약 8% 올랐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레드 숄더 랜치 샤도네이’는 12만9000원에서 15만2000원으로 18% 올랐다.
나머지 ‘TD-9′은 15만9000원에서 17만4000원으로 9% 상승했다. 국내에 들어오는 쉐이퍼 와인 5종 가운데 유일하게 ‘릴렌틀리스’만 25만9000원으로 지난해와 가격이 같았다.
신세계L&B가 계열사 소유 와이너리 와인을 이전 수입사보다 비싼 값에 들여오기로 결정하면서, 신세계그룹 와인이 롯데마트 같은 경쟁사나 일반 와인 전문점에서 더 싸게 팔리는 경우도 적지 않게 목격되고 있다.
신세계L&B가 새로 들여오기에 앞서 국내 시장에서 팔리던 이전 수입사 물량이 일부 남아있기 때문이다.
와인은 포도라는 농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상품 특성상 빈티지(생산연도)나 작황에 따라 가격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다만 같은 와인값이 한 해만에 두자릿 수로 바뀌는 경우는 어지간해서는 보기 드물다.
신세계L&B 관계자는 “2021년 서리 피해와 코로나19로 인한 중남미 노동자들의 미국 입국 제한으로 와이너리 인건비가 상승해 부득이하게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해당 시기 환율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와인 겉면, 공병, 박스 같은 포장재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른 탓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국제 와인시장에서 쉐이퍼 빈야드 와인 가격은 국내만큼 출렁이지 않았다.
세계 와인 거래 시장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가격비교 플랫폼 와인서처에 따르면 올해 국내에서 18%가 오른 레드 숄더 랜치 샤도네이 2019년산 가격은 2021년 이후 줄곧 50달러(약 6만6000원) 중반을 맴돌았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품종 포도로 만든 와인들을 총망라해 평균을 낸 벤치마크 와인 가격 역시 2021년 3월 기준 40달러에서 지난달 41달러로 큰 차이가 없었다. 오로지 국내에서만 20%에 가까운 가격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이 ‘돈 되는 곳이라면 물 불 안 가린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와인 산업에 진출할 때만 하더라도 ‘와인 대중화를 통해 시장 파이를 키우고, 그동안 와인에 낀 거품을 걷어내겠다’는 명분을 앞세웠다”며 “직접 인수한 와이너리 와인 값을 이렇게 한꺼번에 큰 폭으로 올리면, 다음 차례는 중소 업체들한테 가져간 독점 수입 브랜드 차례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